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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성실로 일궈낸 천만금짜리 일터 - 신도네트 당진점 강병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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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 기사생활 19년만에 독립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모범적인 삶의 표본으로 칭송받는 것은 비단 우리 사회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 유난히 이들이 자주 회자되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드문 일이고 또 일부에선 성장제일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가진 사람들이 자주 써먹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원인이야 어찌되었건 개인의 능력보다 뒷배경이 중요시 돼 온 사회에서 열심히 일해 자수성가한 이들은 분명 박수받을 만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얼마전 당진읍내에 사무용기기 판매․수리점을 차린 신도네트 당진점 강병수(39세)씨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함께 섞여있어 자신은 아직 성공이란 표현이 부담간다고 하지만 6남매의 가장이 빈손으로시작해 이만큼 꾸려sos 것은 누가 봐도 대단한 일이다. 인내와 성실함, 자신의 일에서만큼은 완벽을 기하겠다는 프로의식이 인쇄소 기사생활 19년을 묵묵히 견디고 독립한 비결이었다.

 강씨는 시곡리가 고향이다. 증․고조대에는 떵떵거리고 살만큼 형편이 좋았지만 할아버지 형제들과 자손들이 일찍 세상을 뜨는 등 집안에 어려운 일이 많이 생겨 가세가 기울었다. 떨어진 폭탄을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살리고 산화한 유명한 강재구 소령이 바로 그의 사촌이다.

 부모님도 그가 열아홉살 때 병환으로 세상을 등졌다. 허름한 집 한칸이 물려받은 재산의 전부였고 대신 다섯 동생들과 할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것이다.

 인쇄소 일을 시작한 것도 그무렵부터다. 열여섯 시간을 일하고 월급 5백원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꼬박 19년을 인쇄소에서 근무하고 강씨는 상무로 퇴임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이들의 바램인 것이다. 인쇄소 일을 하면서 강씨는 사무용 기기쪽에 관심을 가졌다. 적성에도 맞았고 전국에서 12명을 선발한 기사자격검증시험에 1급으로 합격할 만큼 능력도 우수했다. 사무용기기 판매․수리점을 차린 것은 이처럼 우연이 아니었다.

 형편만 허락했다면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동생들 학부형 노릇이 그에겐 더 급했다. 학용품값 대는 일보다도 부모없는 아이란 말을 듣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그였기 때문에 동생들은 형을 신뢰했고 탈없이 자라주었다. 형제들끼리 십시일반으로 새 집을 마련했고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결혼도 했다. 불혹을 앞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보낸 세월이었다.

 강씨는 현재 아내와 함께 일하고 있다. 손익분기점까지는 월급을 주지 않겠다는 짠돌이 사장이지만 자리잡히기 전까지는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사업관이다.

 살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미소짓는 강병수씨. 연년생인 개구쟁이 두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형을 닮아서인지 ‘아가씨 꼬시는 재주가 없어’ 혼기를 놓친 두 동생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소박한 그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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