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ꡒ저승길 배웅, 즐겁게 해야죠ꡓ - 면천면 성상리 황장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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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두꾼 노릇 30여년

 

 30여년을 상두꾼 노릇을 해온 이가 있다. 그를 아는 노인들은 한결같이 그의 소리를 들으며 저승길로 떠나길 바랬고, 마을에 줄초상이 나지만 않으면 예외없이 그는 그 부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부친이 사망했을 때 상제가 상두꾼 노릇을 할 수 없어 상여꾼들이 ꡐ어와 딸랑ꡑ만 되풀이 하며 장지까지 가야했을만큼 그는 이 분야에서 유별나고 독보적인 존재이다.

 면천면 성상리에 사는 황장성(53세)씨. 몇해전 당진에서 열렸던 전국노래자랑에서 방갓을 쓰고 나와 쇠를 두드리며 널부러지게 한가락 뽑아 좌중을 휘어잡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황씨는 상투를 틀자마자 상두꾼 노릇을 했다. 열세살 무렵부터 상두꾼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어깨 너머 소리를 배웠고 그보다 더 어렸을 적엔 정쟁이였던 증조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귀가 닳도록 소리를 들었다. ꡐ타고 난 끼ꡑ가 있어 그는 소리를 듣고마는 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광천에 갔다가 우연히 회심곡 책을 구한 황씨는 그때부터 자나깨나 소리연습을 했다. 나무하러 가면 뭐든지 소리가 나는 것을 집어들고 두드리며 해질 때까지 소리를 했고, 모 심다가도, 벼 타작하다가도 늘 흥얼거렸다.

 사람들은 그가 스승 뫼시고 제대로 교육을 받았더라면 인간문화재는 벌써 됐을 거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다. 먹고 살자고 시작한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그냥 자연스레 귀에 들어오는 것을 내뱉었을 뿐이었고 남보다 소질이 있었을 뿐이었다.

 상여꾼들은 그가 선소릴해야 발길이 가벼웠다. 그의 선소리는 상황에 따라 내용이 천차만별이었으니 그 소리에 장단 맞추다 보면 상여가 무겁지 않았다. 망자가 자식 다 출가시키고 앓지 않고 세상을 떠난 호상이면 그는 경쾌한 소릴한다. 망자가 생전에 자주 들렀던 주막을 지나게 되면 거나하게 한가락하고 괄괄했던 사람이었으면 놀부편의 심술타령 한 대목을 하기도 한다.

 상제가 부모생전에 효를 하지 않은 사람이면 지팡이로 맞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회심곡의 부모은공편을 읊어 훈계를 하기도 한다. 살아계실제 치성드릴 일이지 돌아가신 뒤에 장례식 크게 치르면서 효도 다한 척하면 무슨 소용이냐 등등이다.

 그는 어느새 프로가 됐다. 가까운 동네뿐만 아니라 덕산, 광천등지에서도 소문을 듣고 그를 부르곤 한다. 민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가끔씩 찾아와 조언을 구하고 그의 소리를 녹음해 가기도 한다.

 요즈음 황씨에겐 걱정거리가 생겼다. ꡐ누구 가르쳐줄 실력은 아니ꡑ지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한다는 이가 없다. 소릴 아는 몇몇 사람들과 친목회를 만들어 함께 연습도 하고 행사가 있으면 내보여 점차 잊혀져 가는 장례문화를 보존하고픈 욕심도 있지만 연습할 장소도 마땅치 않고 이것저것 여건이 맞질 않는다.

 30여년 상두꾼 노릇에 자신의 것이라고 남아 있는 것은 타고난 목청뿐이라는 황씨는 답답할 때 문 걸어 잠그고 혼자 소리판 벌이는 일과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선소리하듯 기록하는 것이 요즈음 일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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