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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만 세상을 살아온 미망인 할머니 - 순성면 이순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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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눈물로만 살았다는 미망인 이순례 할머니(64세). 이순례 할머니는 순성면 봉소리가 고향이다.
 이순례 할머니가 시집을 온 것은 17세때. 대전으로 유학갔다가 피난내려와 아무것도 가진 것없는 이에게 시집을 오게 되었고 첫아들이 선 때였으니 그의 나이 열여덟, 남편의 나이 스물셋이 되던해에 남편은군대에 갔다. 그리고 바로 이듬해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었다.
 전사소식을 접한 그당시를 회고해보면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보다는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남편에 대한 기억? 시집와서 한자리에 앉아서 오붓하게 밥을 같이 먹어본 적도 없고 앉아서 얼굴보며 얘기해 본 기억도 없으니 정답게 살아보질 못했지. 그래서 기억할 것도 없어. 혹 지금 보더라도 얼굴을 알아볼 수나 있을런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은 고사하고 그에게 닥쳐온 삶의 짐에 짓눌려 슬퍼할 여력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9남매의 둘째였으니 그에게 남겨진 건 시어머니와 시동생, 그리고 유복자로 태어난 “부모 잘못 만나 고생만 한”아들하나였다 게다가 아들의 전사소식을 접한 시어머니는 충격으로 병석에 누워 팔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단 하나 의지할만한 끈이었을까? 친정으로 갔다. “할아버지가 환약을 주면서 이거라도  팔아서 살아보라고 하대. 죽지만 말라는 얘기와 함께.” 하지만 약 행상노릇도 ‘아랫목에 앉아서 윗목 사람얼굴도 쳐다보지 못한’숫기없는 새댁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집집마다 방문해서 말도 못 꺼내고 있으면 왜 새댁이 이런일을 하냐며 약을 들여놓지 않아도 무언가를 건네주던 사람들이 그에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당시 머리에 이고 천안이나 홍성까지 걸어다녔다. 밤중까지도 걸어 걸어서 집에 오면서 아들걱정 보다는 병석에 누워있는 시어머니 걱정에 속태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끝내 눈물을 삼키지 못했다.
 밤이면 길쌈해서 삼을 삼았고, 나중엔 공장에도 다녀봤다. 전부 그에게 딸린 식구들 생계를 잇기 위해서였다.
 셋방살이 30년동안 눈물로 살아온 이순례 할머니. 18년전 군수표창, 6년전엔 국방부장관표창을 받았지만 사실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전쟁으로 빚어진 그의 고통스럽고 눈물로 얼룩진 삶을 조금이라도 위로한다는 뜻일 뿐이다.
 이순례 할머니의 얘기는 끝이 없을 듯했다. 눈물을 삼키지 못해 몇번이나 얘기를 멎었다가 간신히 이할머니는 말문을 맺었다.
/지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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