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사진은 목욕탕이 없었던 시절, 잿물로 겨 비누를 만들어 쓸 때의 사진이다. 딸아이(최은희, 33)가 펌프 옆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사진 속 장소는 지금 살고 있는 신당리 집 앞의 30년 전 모습이다. 사진이 있기에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딸아이는 원 속의 사진처럼 커서 벌써 아이를 낳았고, 세상은 모를 정도로 달라졌으니 흑백사진 속 30년 전 얘기는 참 먼 얘기가 돼버렸다.
두번째 사진은 아내(이승례, 59)와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사진으로 흰옷처럼 보이는 옷은 사실 분홍색 한복이다. 사진은 흰색을 분홍색으로 바꿔놨지만 그 때의 행복과 추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한 것 같다.
세번째 사진은 내 형제들의 모습과 함께 그 당시 겨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뒤에 보이는 것이 짚 누리(지금의 벼 보관시설)인데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농사일을 해온 나는 농사방식의 변화를 손수 체험한 사람이 됐다. 왠지 농촌·농업하면 낙후됐다는 선입견부터 갖기도 하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짚 누리, 삼발이 등 조상들로부터 물려 내려오는 것들에는 무한한 지혜가 담겨있다.
마지막 사진은 신평농협 임원들과 지난 1990년 설악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난 시절 몰랐던 것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알아지는 것 같다. 시집살이하면서 말하지 않았던 아내의 사연들을 뒤늦게서야 조금 알게 됐다. 또 말할 수 있는 다른 한 가지는 흔적이 많으면 그 만큼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11남매였던 우리 집에 방이 많았던 것처럼 사진에 담겨진 모습, 그리고 과거부터 지금껏 가지고 있는 것들에는 “왜?”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담겨있다.
※최칠영(58)씨는 농촌지도자 신평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인 이승례씨와 1남2녀를 두고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