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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05.08.16 00:00
  • 수정 2017.08.12 00:48
  • 호수 575

정규룡
"멋쟁이셨던 아버지, 풍운아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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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룡 일교낚시 운영

당진상고(현 당진정보고)재학시절 난 어지간히 ‘땡땡이’를 잘 치는 이른바 문제학생이었다. 학교공부는 정말 재미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과수원으로 서리하러 다니고 학교뒷산에서 호떡내기 ‘나이롱뽕’을 치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첫번째 사진은 그 시절 대덕리 송정의 한 복숭아 과수원에서 서리를 하는 장면이다. 그때 공범(?)이었던 친구들이 나만 범행 현장에 밀어넣고는 짖꿎게 사진을 찍어버렸다. 교복모자에 복숭아를 가득 따서 풀섶에 숨겨두었다가 다음날 가 보면 어느새 딱딱했던 복숭아가 말랑말랑해져 먹기에 딱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서리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은 아마 지인모, 김경태, 김진희, 송하원이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우리 다섯은 이름하여 ‘출결무상’클럽이었다. 출석과 결석이 때가 없을 정도로 수업을 잘 빼 먹는다는 뜻이다. 물론 그 클럽의 ‘최우수 회원’은 바로 나였다.  신나게 놀고 자잘한 사고를 치며 보낸 고교시절이었지만 난 한번도 그 시절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때 난 자유로왔고 소중했던 친구들은 지금까지 내 곁에 있으니까.
두번째 사진은 1956년도 내가 다섯살 때 여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동생과 나는 티격태격 잘 싸우면서 자랐다. 동생의 배가 맹꽁이처럼 튀어나왔다. 그 시절 아이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었다. 못먹어서 그랬다는 말도 있는데 동생 허벅지를 보니 못먹은 허벅지 같지는 않다.
세번째 사진은 우리 부모님의 30대 시절이다. 무슨 특별한 날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사진관에 가서 소품을 들고 한껏 폼을 잡으신 모습이 지금 봐도 그다지 어설프지 않고 세련되어 보인다. 실제로 우리 아버님(정창섭, 1984년 작고)은 꽤나 멋쟁이셨다. 목공소를 운영하셨는데 한때는 사업이 잘되어 당시 유행하던 금니도 해 넣으셨고 항상 멋내기용 지팡이를 들고 다니셨다. 그 지팡이를 놓으시고 돌아가신지 벌써 20여년이 된다.
네번째 사진 속 주인공은 내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머리에 쓰신 갓 모양을 봐서 구한말시대, 그러니까 1920년대나 30년대에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다.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 형제들이  당시 쌀 한가마니 값을 들여 찍어드린 것이라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었을 그 당시에 큰 돈을 들여 사진을 찍어놓은 의미를 나는 요즘에서야  알 것 같다. 생존해 계신다면 할아버지의 연세는 지금 135살.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세월이지만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나의 뿌리를 찾게 되고 그러기에 외롭지 않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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