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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 29]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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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생활을 하면서 한가지 후회되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학생 한명을 퇴학시킨 일이었는데 교직을 끝내더라도 머릿속에 그 학생에 대한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그 학생은 23년 전 어느 봄날 퇴근 무렵 버스 정류장 앞에서 술이 취한 상태로 교사에게 버릇없이 행동했었던 일로 인해 교복을 벗게 되었다.
당시 그 학생은 서울의 부모와 따로 떨어져 살고 있었는데 퇴학을 며칠 앞두고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부랴부랴 학교를 찾았다. 고3 담임이었던 나는 학생의 아버지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아버지는 등나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시면서 선처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10년은 더 연상이셨던 그 아버지의 돌발행동에 어쩔줄 몰라 일어서시게 해드려도 막무가내이셨고 아들에 대해 무관심했었던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계속해서 선처만을 부탁하셨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은 혼란스러웠고 그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눈물을 흘렸었다. 그럼에도 끝내 퇴학처리는 이루어졌고 학생은 몇 달 후 학교를 찾아 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노라고 인사를 했었다.
그 사이에 학생의 아버지는 서운한 마음을 편지로 전해왔었다. “학교가 문제가 있는 학생이라 해서 외면하면 누가 그들을 지도할 것인가?”라는 내용의 장문의 편지였다. 나는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하필이면 그 편지를 받은 그날은 체육대회를 하던 날이었다. 답장을 준비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지금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나는 “우리 학교와 아이들은 바닷가 개펄에서 낙지와 굴을 따서 생계를 이어가는 가정의 아이들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가난하지만 순진한 농부의 아이들로 구성된 자그만 학교입니다. 도회지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일이 하나의 평범한 사건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이곳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있을 수 없는 행위입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교칙대로 처리를 한 것입니다. 담임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 용서를 구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써서 학생의 아버지께 보냈었다.
그리고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40이 다 되었을 그 학생과 60이 넘었을 아버지 모두에게 나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용서를 지면을 통해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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