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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출향인 이근배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산업도 발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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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후배들과 유유자적하며 당진발전 보고 싶습니다”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산업은 한쪽 수레바퀴만 굴러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탈리아는 그들의 장인정신이 녹아있는 ‘이탈리아’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렸습니다. 그들의 산업에 문화를 접목시킨 겁니다.”
 
“초대군수 이름 아세요?”
 고향을 떠난 지 40여년이 넘었다는 이근배(65) 시인. 사실 그의 원래 소망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라면서 대유학자로 널리 알려진 조부(이각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당진군의 초대군수 이름을 아는 사람이 과연 당진에 몇 명이나 될까요? 저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요. 박명진 초대군수. 어렸을 때 ‘박명진 초대군수가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왔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이 그렇게 기억에 남습니다.”
 편모 슬하에서 조부와 함께 살아왔다는 그는 조부가 세상을 뜨고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서 전답을 팔고 서울로 올라와 살기 시작했다.

취미가 ‘벼루 모으기’
 “‘단계’라는 곳을 아시는지요? 중국의 지명인 ‘단계’는 유명한 벼루용 돌이 생산되는 곳입니다. 이제는 이곳에서 더 이상 돌이 생산되지 않지만 이 ‘단계’에서 나오는 돌로 만드는 벼루는 정말 유명하죠.”
 그는 정식으로 서예를 배운 적이 없으면서도 서예에 대단한 조예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문방사우’에 관심을 갖게 됐고 문방사우 중 소모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종이와 먹, 붓 대신에 ‘벼루’에 집착을 하게 됐다고 한다. ‘좀 더 먹이 잘 갈리는 벼루’를 찾았고, ‘단계연(端溪硯)’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만큼 벼루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말하는 이씨는 “국립박물관에도 없는 귀한 벼루들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의 소장품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당진은 문화 잠재력 충분해
 “당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물류의 허브’였습니다. 각종 산물들이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었고, 중국으로 가는 사람이나 물건들은 당진을 반드시 거쳐야 할 정도로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열렸던 당진항 명명식 때 축시를 지어 낭독했던 이근배 시인은 당진이 가진 잠재력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당진항 명명식을 계기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해안 교역이 냉전으로 인해 반세기 동안 단절됐었지요. 자연히 당진도 침체기를 겪었지만 이제는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겁니다.”
 문학 뿐만 아니라 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강조했다.
 “저 이탈리아를 보십시오. 이탈리아는 ‘장인정신’이 녹아있는 ‘이탈리아’를 브랜드화시켜 ‘이탈리아 제품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도록 했습니다. 자신들의 문화를 산업화한 것입니다.”
 “얼마 전 당진군민들과 함께 봉평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봉평의 이효석기념관에 갔는데 사실 그 곳에는 볼 것이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이효석기념관’ 하나를 보기 위해 그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근배 시인은 당진의 심훈을 이와 같은 모델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항문학’의 선두주자였던 심훈은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하나의 소설로 유명한 이효석에 비해 시(그날이 오면), 소설(상록수) 뿐만 아니라 영화분야에서도 유명했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고 한다. 이씨는 “심훈을 널리 알리고 적극적으로 산업화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며 “심훈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수주대토’, 고향에 뿌리내리고 싶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있었는데 이젠 고향에 돌아오고 싶습니다. 토끼가 죽을 때는 자기 굴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고사도 있듯 저도 고향에 돌아와 고향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문화 분야, 특히 시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근배 시인. 그는 시를 지을 때도 항상 고향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고향을 소재로 한 시도 많이 있다고 한다.
 “감투나 그런 것은 필요없습니다. 고향 후배들과 함께 유유자적하며 고향의 발전을 지켜보고 일조하고 싶습니다.”

 

 

 

 

1940년 송산면 삼월리 출생
송산초-당진중-당진상고-서라벌예술대
1961년 서울신문,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시조 당선으로 등단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문화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 역임
한국문학작가상, 가람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육당문학상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전, 2002∼2004)
지용회 회장(현)
공초숭모회 회장(현)
만해학교 교장(현)
충남시인협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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