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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9.04 00:00
  • 호수 628

땀과 눈물 쏟아부은 3년, 1천평 하우스에 초록색 꿈 만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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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면 복운리 다림농원(多林農園) 안인기씨

▲ 소품이 될만한 호접란 작은 꽃을 들어보이며 활짝 웃는 안인기씨. 지난 수년간의 쓰라린 죄절이 있었기에 그의 1천 5백평 호접란하우스는 더욱 풍성하다.

아름다운 나비를 닮아 호접란(胡蝶蘭), 꽃말처럼 행복이 날아드는 꽃
밤에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침실 공기정화용으로 애용
수출에서 개인용 소품 소매까지 호접란의 인기는 무궁무진해

 송악면 복운리 다림농원. 1천평에 이르는 안인기(44)씨의 하우스는 요즘 초록물결로 일렁인다. 아침 일찍 조반을 먹고 나왔다가 저녁 늦게 귀가할 때까지 몇 년째 하루를 송두리째 쏟아온 이곳. 이제는 자신과 한몸이라고 착각할 만큼 늘 보아온 곳이건만 요즘 이곳에 서면 안인기씨는 새삼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벅차다. 저렇게 초록빛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주다니...안씨는 하우스 가득 진풍경을 펼친 호접란 잎들이 그저 대견하고 뿌듯하다.
 이제 200평 하우스 두 동과 600평 하우스 한 동, 모두 1천평에 걸쳐서 잘 자라고 있는 안씨의 호접란. 며칠전에는 그중 곱게 꽃이 핀 것 1백여본을 내다팔았다. 한 3년만에 처음으로 안씨의 호접란이 출하된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는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안씨가 당진에 정착해 호접란과 인연을 맺은 것은 5년전. 당시 이곳 복운리에는 법인을 만들어 호접란 재배를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힘겹게 여럿이 고생하며 준비한 보람도 없이 꿈은 사라지고 어쩌다 보니 여럿이 함께 투자해 덩치만 커진 하우스며 시설이며 자금부담은 모두 안씨 차지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난’재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대식물인 ‘난’의 까다로운 생육조건을 맞추려면 갖춰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언제나 실온 23도와 25사이를 맞춰주려면 온풍기와 환풍기는 기본이고, 하우스 지붕 안에 다시 천정을 만들어 보온덮개를 해줘야 한다. 게다가 보통 규모가 큰 것이 아니다 보니 시설자동화는 기본이었다. 어려웠지만 한순간도 게을리 않고 늘 최선을 다했다. 전문대에서 원예를 전공한 그였기에 이론면에서도 자신이 있었고 그 뒤로도 오랜 세월을 ‘난’과 식물을 재배하는 데에 바쳐온 몸이었다. 
 그렇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날마다 눈만 뜨면 하우스로 나와 정성껏 보살폈지만 어린 난잎들은 보살필수록 병이 들고 정성을 들일수록 썩어갔다. 나중에는 하다하다 8만분에 이르는 ‘난’을 멀리 제주도로 요양(?)을 보낸 일도 있었다. 무언가 생육조건이 맞지 않아 그런 것이라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후 웬만큼 환경에 대한 저항력이 생겼을 때 데려오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주도는 그가 전문대에서 원예를 전공한 후 교수님의 소개로 내려가 기거했던 곳이라 왠지 의지가 되었다. 그때 그곳에서 한 1년간 실습을 하며 배웠었다. 제주도로 ‘난’들을 보낼 때 그걸 하나 하나 포장하던 일들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더 아찔한 일이 생겼다. 제주도로 보낸 ‘난’ 8만분이 그곳의 관리부실로 모두 새까맣게 죽어버린 것이다. 그때 텅텅 비었던 하우스는 당시 안씨의 마음보다도 더 황량하고 공허했다. 그리고 막막했다.
 나중에 안 일이었다. 복운리 일대의 물이 유기물과 염분이 많아 뿌리가 예민한 ‘난’재배에는 치명적인 악조건이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안씨는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오랜 출혈투자와 몇 년간 자신에게 아무것도 안겨주지 않은 ‘난’재배는 안씨에게 빚밖에 남겨놓지 않았다. 그때 안씨를 도와준 것은 바로 당진군농업기술센터(소장 홍천표)였다. 화훼담당자 남상문씨를 비롯한 센터는 안씨의 노력과 그의 딱한 처지를 알았기에 앞장서서 도왔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일대의 물에 대한 수질검사였다. 수질검사에 이어 센터는 안씨의 1천평에 이르는 하우스에 대야할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초대형 정수기를 지원해 주었다.
 물문제가 해결되자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었다. 안씨는 이미 안씨 스스로가 어쩌지 못하는 그곳의 수질문제 말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 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수기를 들여놓고 1년여가 흘렀다. 지난 8월 29일 방문한 안인기씨의 호접란 하우스 1천평에는 각각 조직배양기와 1년생, 2년생이 된 호접란 15만분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지난 수년동안 마음고생으로 굳어졌던 안씨의 표정에도 이제 안도감이 번지는 듯했다. 안씨는 올봄 당진인근의 ‘난’ 작목반 구성원들을 초청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동안의 실패와 고난위에 우뚝선 자신의 농원을 이제는 스스럼없이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는 유통관계자들도 참석했었는데 안씨의 하우스를 둘러본 그들을 통해 바로 몇군데 판매망이 확보됐다. 그리고 요즘은 일본과의 수출이 성사돼 그 출하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지난 몇 년간 거듭되는 실패와 고난 앞에서도 이를 악물고 경쟁력있는 농업의 길을 찾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안인기씨는 이제 그 쓰디쓴 인내가 맺어준 단 열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이 호접란들이 병충해없이 잘 자라주어야 하고 그럴려면 평소와 다름없이 호접란들이 자라는 하우스의 온도와 습도, 수분과 양분을 살뜰하게 살피는 노고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송이의 어여쁜 호접란 꽃송이를 피우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린다. 이 2년동안 세 번 분갈이를 해준다. 평소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호접란은 생후 18개월경이 됐을 때 저온처리과정에 들어가 약 45일을 지내야 한다. 그래야 화분화(花粉化)하여 꽃을 피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꽃대가 생기면 다시 4개월을 자란 후 꽃봉오리가 알맞게 맺혔을 때 출하하게 되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절망과 또다른 실패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2년여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꽃이 필 때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난을 가꿨던 안씨의 집념과 정성이 경탄스러울 뿐이다. 
 호접란은 밤에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침실의 공기정화용 식물로 많이 알려져있고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선물용으로도 가장 많이 찾는 식물 중 하나다. 요즘은 선물용 말고도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보고 즐기는 관상용으로 호접란 소품이 관심을 끌고 있는데 안인기씨는 이 모든 소비자의 기호와 추세를 잘 읽고 있다. 한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안인기씨의 일상은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하지만 마음만은 자부심과 기대로 어느 때보다 뿌듯하다.       

   /글 김태숙, 사진 원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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