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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07.04.02 00:00
  • 수정 2017.08.14 06:00
  • 호수 656

민병홍 태평양교통연구실 대표
"제2의 ‘고향’, 그리고 40년만의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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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사진

고향은 한 사람에게 있어 삶의 원천을 제공한다. 어렵고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고향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빽’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고향이 둘이 될 수도 있다. 태어나서 자란 고향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정착한 제2의 고향이 그것이다. 옥천은 내 뼈와 살이 만들어진 고향이지만 당진은 내게 새로운 삶을 시작한 또 하나의 고향이다.

첫 번째 사진은 1996년 당진에 정착한 이후 건설회사를 경영할 무렵, 동창회에서 40년 만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함께 태안의 바닷가로 기념여행을 떠났을 때의 모습이다. 충북 옥천군의 안내초등학교 41회 출신인 나는 너무나도 깊은 정이 들었던 초등학교 친구들을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맨 왼쪽이 김기흥, 세 번째가 이경한이다. 네 번째의 친구는 박사로 한국교총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섯 번째가 나다.

두 번째 사진은 그 무렵 초등학교 동기들 중 제일 친한 친구인 이경한(한전 국장, 사진 왼쪽), 김기흥(개인사업, 사진 오른쪽)과 부부동반으로 우리나라 최남단인 마라도에 놀러가서 찍은 것이다. 이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해 50대인 지금까지 서로 교류하며 여행을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다.

초등학교 동기들과는 내가 대전으로 전학하는 바람에 5학년 때 헤어졌다. 이후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옥천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가장 많이 가슴에 남는다. 당진에 정착하기 전에는 경기도 안양의 건설회사와 다도양행의 컨테이너 사업부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무렵 지인의 소개로 1995년 한보철강의 입주로 한창 건설경기가 불었던 당진지역에 전망을 두고 송산 삼월리로 내려와 건설업체를 운영했다. 여러차례 이사를 다니느라 옛날 사진을 거의 다 잃어버렸지만 초등학교 동기들과 찍은 이 사진은 무척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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