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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국밥집 17년, 뻐꾸기아줌마 김유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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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가고 없는 세월, 이웃잔정 나누며 살아온 일곱평 보금자리

 “욕심안내유, 하루 50명 점심만 드실 수 있슈”

당진 채운교를 지나 교육청 방면으로 걷다보면 백병원 못미쳐 손바닥만한 국밥집이 하나 있다. 뼈국밥집의 ‘뼈’라는 글씨는 세월에 날려 하얗게 색이 바랬고 그래서 멀리 보면 그냥 국밥집이다. 예쁠 것도, 눈에 띌 것도 없이, 없는 듯이 모퉁이에 있는 그런 집인데 문틈으로 풍겨나오는 구수한 비지냄새에 뭔지 모를 진한 것이 배어있어 구미를 당긴다.
 어느덧 낮 12시. 슬그머니 식당 문을 여니 4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사람보다 먼저 들어가 일곱평 남짓 작은 국밥집이 환해진다. 네 명이 바듯이 앉을 법한 여섯 개의 식탁 가운데 네 개에는 사람들이 둘러 앉아 수수한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다. 뼈국밥집 주인 뻐꾸기아줌마도 점심상 차리기에 한창이다. 뻐꾸기아줌마는 뼈국밥집을 부르기 어려워 이웃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뻐꾸기 아줌마 김유순(63)씨는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무심태평한 표정으로 밥을 짓고 뚝배기를 불위에 올렸다 내리고 찬통에 김치를 담는다. 너무 편하고 천연덕스러워 보여서 일하는 사람 같지가 않다. 들어오는 손님에게 어서 오시라는 법도 없고, 나가는 손님에게 안녕히 가시라는 법도 없다. 들어오는 손님과 눈이 마주쳐도 빙그시 미소지을 뿐 손님쪽이 말을 걸어 올 때까지 먼저 말을 거는 법도 없다. 이쪽에서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해도 “예~” 한마디 하고는 그만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기분좋게 앉아 밥을 기다린다.
 그렇다고 그녀가 손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손님들이 앉은 식탁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소짓기도 하고 뭐 부족한 게 없나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저 모든 게 매일 보는 식구 대하듯 무심한 것이다. 그렇게 17년의 세월이 국밥집을 지나갔다.
 17년간 변함없는 이 집의 공식 메뉴는 달랑 세 개. 돼지등뼈국물탕과 비지찌개, 그리고 순두부찌개다.  그 중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이 뼈국물탕과 비지찌개. 여기 비지찌개는 아랫목에 며칠간 띄운 비지에 김치와 두부를 썰어넣어서 칼칼하고도 구수한 맛에 씹는 맛까지 있다. 그래서 보통은 비지찌개를 좋아하지 않는 꼬마아이들도 이곳에 오면 국자로 푹푹 떠서 밥에 쓱쓱 비벼 잘 먹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밥을 잘 먹는 또다른 이유, 그것은 손님이 올 때마다 매번 새밥을 해서 먹인다는 김유순씨의 원칙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들은 매번 자신의 밥에서 나온 자신만의 누룽지를 먹게 된다.
 뼈국물탕은 전날 과음한 사람들에게 해장용으로 그만인데 이 음식이야말로 김유순씨가 17년전 식당을 처음 열면서 개시한 메뉴였다. 그때의 지론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바로 이것. “그냥 집에서 해먹는 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김유순씨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그냥 집이서 해먹는 대루 허는 게 최고지 무어.” 가끔 가족들 보양식으로 뼈를 푹 고아 국물탕을 끓여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 만든 음식이다.
 이 몇가지 안되는 음식에 밑반찬도 깍두기와 김치, 새우젓, 곤쟁이젓, 우거지 같은 것이 전부다. 그런데 사람들은 뭐가 좋아 이 국밥집을 찾는 것일까. 바로 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맛, 지극히 일상적인 맛을 특별하게 만드는 김유순씨의 손맛과 말없는 미소 속에 담긴 정 때문이다. 새우젓에 갖은 양념을 한 양념새우젓과 곤쟁이젓은 김씨가 개발한 것으로 통에 따로 담아 팔기도 한다. 한때 저녁장사도 했지만 혼자 힘으로 일과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점심만 제공한 지가 오래 되었다. 요새는 한 50명분의 식사준비만 하고 아침 10시반에 문을 열어 점심장사를 한 뒤 오후 2시나 3시쯤 문을 닫는다.  
 그러고 보면 이 집의 식객들 모두 낯익은 사람들이다. 누군지 바로 알아보진 못하지만 밥먹는 동안 그 얼굴을 한 번 더 보면 한사람은 언젠가 자동차 정비하러 갔을 때 만났던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또 한사람은 오래 전에 공직생활을 마감한 모 과장님이고 한사람은 전에 어느 헬스장 근처에선가 한번쯤 스쳐지나간 것 같은 맨얼굴의 건강한 아가씨다. 그리고 몇사람은 한동네 오랜 단골들이다. 국밥집 주인 김유순(63)씨와 허물없는 그들은 곧 다른 손님들에게도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비록 허름하고 투박하지만 그 나름의 역사와 그 나름의 정이 있어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두고 이 집을 찾는다. 가끔은 외지에서 온 특별한 손님에게 이 집을 안내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바로 이 집 주인과 음식이 고루 가진 투박함과 질박함 때문이다. 말은 많지만 정작 쓸 말이 적고 웃음은 헤프지만 정을 나누지 못하는 세상에서 김유순씨는 사람들이 잃어가는 것을 오롯이 모아 단촐하게 한 상 차려내는 재주꾼이다. 마음이 고단할 때, 어느날 문득 아무런 격식없이 편안한 밥을 먹고 싶을 때 사람들은 이곳에 온다. 그리고 사람들이 맛있게 밥먹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잘 먹었다고 한 마디 하고 가고 것이 김씨에게는 너무나 벅찬 보람이다. 김씨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일찍 남편을 잃었지만 일곱평짜리 작은 식당에서 이웃들과 가족같은 정을 나누며 살다보니 세아들을 통해 아홉식구를 얻었으며 작은 집도 하나 장만했고 가끔씩은 경로당에 쌀을 갖다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날마다 밥을 팔며 정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 김씨는 즐겁다. 
 “사는 거 특별한 거 있슈? 다 그런 거쥬 무어.”
 8남매중 맏이로 어렵게 살았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성화로 유준근이라는 한 남자와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으며 40중반부터는 혈혈 단신 세상을 헤치며 살아왔다. 그 세상살이를 김씨는 한마디로 그렇게 말했다. 사는 거 뭐 있느냐고. 뭐 특별할 거 있느냐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김씨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가슴에 슬픔을 잘 품고 사는 사람은 김씨처럼 수더분하게 웃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잘 사는 삶이 있을 것 아니냐고 묻자 김유순씨는 이렇게 되묻는다. “잘 사는 거? 넘한테 욕 안먹고 넘이 꺼 떼먹지 안쿠 서로가 보살피면서 사는 거쥬, 그런 거 아니래유?”
 김유순씨에게는 소박한 희망이 있다. 나이 70이 될 때까지 남들 점심밥 챙겨주고 그 뒤로는 배울 것 배우고 베풀 것 베풀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이미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놓고 있었다.
 식당 벽에서는 김씨의 자전거가 쉬고 있었다.

글_김태숙 / 사진_최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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