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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07.05.14 00:00
  • 수정 2017.08.14 06:01
  • 호수 662

유재풍 당진군사회복지협의회장
"초가집 옆에 있던 추억의 당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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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빛 바랜 흑백사진 한 장은 잃어버린 내 젊음과 당시의 이웃과 지역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어 소중한 추억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전쟁 직후인 1953년 예산중학교 3학년에 재학할 당시 고향인 예산군 주교리의 역전 신작로에서 찍은 것이다. 사진에서 맨 오른쪽이 나고 맨 왼쪽이 누이, 가운데에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한시에 조예가 깊어 성균관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집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저녁이면 시조를 배우려는 문하생들로 사랑방이 가득 차기도 했다.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신 모습에서 꼿꼿한 유학자의 풍모가 느껴진다. 예산여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누이(재희)는 꿈 많던 문학소녀였다. 소설에 심취해 직접 소설가들을 찾아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부모님 사이에 보이는 학생은 전쟁으로 피난 내려와 집에 잠시 머물고 있던 친척이다.

 두 번째 사진은 1969년 여름에 큰아들을 안고 당진극장 앞에서 찍은 것이다.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1965년, 농촌지도직으로 7급 공채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낯설기만 한 직장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가던 무렵 결혼을 했고 소중한 아들을 얻었다. 당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젊고 꿈 많던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이 때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지 너무나도 변해 버린 지금 사진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진의 배경인 당진극장은 지금과 비교해 너무나도 달랐던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때 젊음의 한 시기를 보냈던 이들은 모두 기억하겠지만 당진극장은 문화에 목말라 있던 지역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공간이었다. 손으로 직접 그렸던 극장간판과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추억의 영화 포스터들, 그리고 그 옆의 초가집까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다.

 세 번째 사진은 1970년대 초반에 당진군에서 잠업계장을 맡고 있을 당시의 모습이다. 당시 2층이던 군청 건물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찍었다. 옆에 보이는 90cc짜리 오토바이는 농가들을 찾아다닐 때 타고 다니던 것이다. 나는 당시 군청 내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뽕나무도 심고 농민들을 만나러 다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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