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유재풍 당진군사회복지협의회장
"초가집 옆에 있던 추억의 당진극장"

유종준 기자l승인2007.05.14 00:00l(662호)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낡고 빛 바랜 흑백사진 한 장은 잃어버린 내 젊음과 당시의 이웃과 지역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어 소중한 추억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전쟁 직후인 1953년 예산중학교 3학년에 재학할 당시 고향인 예산군 주교리의 역전 신작로에서 찍은 것이다. 사진에서 맨 오른쪽이 나고 맨 왼쪽이 누이, 가운데에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한시에 조예가 깊어 성균관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집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저녁이면 시조를 배우려는 문하생들로 사랑방이 가득 차기도 했다.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신 모습에서 꼿꼿한 유학자의 풍모가 느껴진다. 예산여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누이(재희)는 꿈 많던 문학소녀였다. 소설에 심취해 직접 소설가들을 찾아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부모님 사이에 보이는 학생은 전쟁으로 피난 내려와 집에 잠시 머물고 있던 친척이다.

 두 번째 사진은 1969년 여름에 큰아들을 안고 당진극장 앞에서 찍은 것이다.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1965년, 농촌지도직으로 7급 공채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낯설기만 한 직장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가던 무렵 결혼을 했고 소중한 아들을 얻었다. 당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젊고 꿈 많던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이 때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지 너무나도 변해 버린 지금 사진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진의 배경인 당진극장은 지금과 비교해 너무나도 달랐던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때 젊음의 한 시기를 보냈던 이들은 모두 기억하겠지만 당진극장은 문화에 목말라 있던 지역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공간이었다. 손으로 직접 그렸던 극장간판과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추억의 영화 포스터들, 그리고 그 옆의 초가집까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다.

 세 번째 사진은 1970년대 초반에 당진군에서 잠업계장을 맡고 있을 당시의 모습이다. 당시 2층이던 군청 건물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찍었다. 옆에 보이는 90cc짜리 오토바이는 농가들을 찾아다닐 때 타고 다니던 것이다. 나는 당시 군청 내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뽕나무도 심고 농민들을 만나러 다녔었다.


유종준 기자  jjyu@djtimes.co.kr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종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31778 충남 당진시 남부로 278 명성빌딩 1동 5층  |  개인정보 관리 책임자 : 김예나 기자   |  청소년보호 책임자 : 김예나 기자
사업자 등록번호 : 311-81-07426  |  제보 및 각종문의 : 041-355-5440  |  팩스 : 041-355-2842
Copyright © 2022 당진시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