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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6 1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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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지역 명물을 찾아서⑤ 신평면 운정리 ‘신평 돌미륵’ ]- 미륵신앙의 산물, 매향과 마을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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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문화유적, 그리고 후손에 전해주어야 할 가치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명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없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본지는 지난해 7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올해에도 지역의 숨어있는 명물과 문화유산을 보도해 넓게는 당진의 관광산업 발전을,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아늑한 성당이나 한적한 절에 들어서면 마음도 덩달아 고요해진다. ‘신’이란 존재 앞에 서면 누구나 경건한 마음이 드는 걸까.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그 안에서 위안을 받고 의지하는 것이 어쩌면 이런 마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역사 속에서도 힘든 시간을 ‘신’에게 의지하며 위안을 받았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미륵신앙의 산물이기도 한 ‘신평 돌미륵’과 안국사지 ‘매향암각비’다.

미륵을 원한 민중의 간절한 마음, ‘매향’

정미면 수당리를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봄꽃이 만발한 안국사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경내에 둘러친 연등이 참 곱다.
안국사지에는 작은 절터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커다란 바위가 있다. 석불 뒤에 묵직하게 세월을 누르고 앉아 있는 ‘매향암각비’는 그 모습이 배와 같다해 배바위 혹은 고래바위라고도 불린다. 국내에 발견된 매향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안국사지 매향암각비의 제작 시기는 고려말(1310년)로 추정되고 있다.
매향이란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 ‘미륵’이 내려올 때를 대비해 향 중에서 가장 좋다는 침수향을 만들기 위해 향나무를 땅에 묻는 의식을 일컫는다. 불교에서 향은 신에게 바치는 으뜸의 공물인 것이다. 
고려말 조선초에 주로 이루어졌다고 알려진 매향의식은 곧 미륵신앙과 연결된다. 당시 해안가는 부패한 국내정치와 잦은 외세의 침략으로 백성들이 고난을 겪고 있었다. 쇠약해진 옛 조상에게 무엇보다 ‘신의 구원’이 간절했을 것이다.
한 학자에 따르면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안국사(安國寺)에 매향을 한 기록을 남긴 것은 그 매향 참여자들이 용화세계라는 이상세계가 도래하길 기원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의 공동체와 나아가 국가의 태평과 안녕을 기원했던 증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마을의 평안을 지켜온 돌미륵

미래에 내려와 도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해 줄 것이라 믿었던 ‘미륵신앙’은 종교적인 믿음이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안전을 기원하고 공동운명체 인식을 고양시키는 데 반영되었음을 보여주는 유적물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매향비와 더불어 마을미륵도 그 중 하나다.
신평면 운정리 하늘을 덮은 푸른 소나무 아래 우강평야를 바라보고 있는 돌미륵이 서 있다. 높이가 2m를 넘는 커다란 미륵상은 자연석으로 투박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삼도와 옷주름살 등을 표현해 미륵불의 모습을 갖추었다. 미륵불이라는 사실 때문일까. 세월에 깎여 투박한 돌미륵이 이젠 그 모습이 희미해져 가는데도 어딘가 모를 평화로운 인상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게 만든다. 
마을미륵은 보통 조선후기에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신평 돌미륵은 조선초기에 세워졌다는 명문이 있어 사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돌미륵에 세겨진 명문에 의하면 세종 10년인 1428년에 조성됐으며 조성시기가 확실하게 밝혀진 마을 미륵 가운데 가장 앞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종근 운정리장에 따르면 10여년 전에는 돌미륵에서 300여m 떨어진 마을 어귀에도 돌미륵이 있었다고 한다.
“10여년 전에 도로 옆에 돌미륵이 하나 더 있었죠. 하지만 어느 날 누가 훔쳐 갔는 지 없어졌어요. 당시에는 34번 국도가 생기기 전이라 그 도로를 오가는 차량과 주민이 많았죠. 도로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하자 불안해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라진 돌미륵 자리에 사자상을 세우고 무사고를 기원했어요.” 
신에게 구제를 바라는 마음은 최첨단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오래전 마을의 수호신처럼 모셔졌을 미륵불이 이젠 눈비를 피할 보호시설 하나 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나마 미륵불 어깨며 옷주름살 틈새에 놓여진 동전들이 그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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