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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8.06.09 00:00
  • 호수 714

2백50개 저항촛불‘쇠고기재협상’ 한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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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터미널 광장은 ‘당진군민 민주주의 놀이터’

헌법1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최고애창곡

6ㆍ3 화요촛불문화제, 당진터미널로 ‘삼삼오오’

 ◎ 저녁 8시를 앞둔 시각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당진읍 신터미널 광장. 양초에 불을 붙이는 사람들의 얼굴에 진지함이 감돌았다.

지난 6월 3일. 당진에서만도 벌써 일곱 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순성에서도, 면천에서도, 신평, 심지어 합덕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사람은 2백50명. 경찰도 2백명은 넘어보인다고 했다. 나이 지긋한 참가자들은 아줌마들끼리, 아저씨들끼리 따로 모여앉은 경우가 많았지만 30대와 40대 가장을 중심으로 일가족 서너명이 한자리에 모여앉은 풍경이 더 많았다.

순성면에서 나온 50대중반의 추모(여)씨와 이모(여)씨는 그동안 열린 촛불문화제에 남편들과 함께 빠짐없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추씨는 소를, 이씨는 돼지를 키운다고 했는데 “소 돼지 키우지 않는 사람도 모두 여기에 나와야 할 일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읍내에서 남편과 함께 왔다는 박모(38)씨는 “그동안 나왔어야 했는데 몸이 아파서 못나왔다”고 말했다.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주말에 뉴스와 인터넷을 보고 아이들이 걱정돼 안나올 수 없더라”고 말했다.

신평면에서 온 성준이와 순성면에서 온 명화는 둘 다 여섯 살배기. 엄마 아빠와 소풍나온 즐거움에 신나있었다. 축제대열의 맨왼쪽 끄트머리와 오른쪽 가장자리에 있어서 이날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을 두 아이는 먼 훗날, 2008년 6월3일에 자신들이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노래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 5월30일, 축산단체협의회와 농민단체협의회, 민주노총당진군위원회, 문화사랑, 당진참여연대, 당진환경운동연합, 어린이책시민연대가 모여 결성한 광우병수입당진대책회의는 “정부고시가 철회되고 쇠고기협상이 무효화될 때까지 매주 화요일 이곳에서 촛불문화제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날 촛불문화제는 앞서 열린 다른 문화제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생활의 기반이 무너져 내릴 거라는 근심과 광우병에 대한 불안이 압도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사람들에게는 신명나는 뭔가가 있었다. 광장에서, 다함께, 하고싶은 말을 소리쳐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한민국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해 지난 수십년 자신들이 피흘린 대가였다.

국민의 간절한 염원과 요구를, 뻔한 정치적 기교와 거대언론을 동원한 여론조작으로 어물쩡 넘기려는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나있을 때에도 사람들에게는 한가닥 기대가 있었다. 전국에서 함께하는 수백, 수천, 수만 국민의 상식과 기대를 21세기 대한민국정부가 차마 외면하지는 않으리라는 소박하고도 지당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5월29일, 미국산 쇠고기수입 위생조건에 대한 고시반대와 재협상요구를 대대적으로 해온 국민앞에 정부가 내민 것은 장관‘고시’라는 노골적인 ‘배반의 장미’였다. 설마하던 국민의 분노가 저항이 되어 거리를 조용히 뒤덮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평화로운 거리행진을 불법시위라 규정하였고 특공대까지 투입해 시민을 방패로 찍고 발로 밟고 소화기와 물대포로 쓰러뜨렸다. 경찰에 연행된 무고한 시민만도 수백명에 이르렀다. 촛불을 누구돈으로 샀느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배후론’이 국민의 심정을 아득한 80년대의 참담함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 2008년 5월의 마지막날과 6월의 첫날, 뜨거운 분노와 배반감, 눈물로 국민은 잠들지 못했다. 주말 거리로 쏟아진 전국 곳곳 시민들의 촛불문화제와 경찰의 진압소식을 인터넷 생중계로 보며 수많은 국민이 날밤을 지새웠다.

당진에서 일곱 번째 화요촛불문화제가 열린 지난 3일, 터미널 광장으로 모여든 당진사람들의 발걸음도 그래서 가벼울 수 없었다. 정부가 이날 미봉책으로 장관고시를 정부관보에 게재하는 걸 보류하겠다고 발표하고 행정안전부가 이미 인쇄된 관보를 제본하지 않은 채 대기상태로 들어갔지만 국민은 그 진정성을 믿지 않았다. 국민은 보류가 아니라 고시철회를 요구했다. 나아가 미국과의 재협상을 원했다.

실용정부가 숨겨온 천박한 국민관의 실체를 마주한 뒤 사람들은 알았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역사와 그 무게가 오로지 국민 자신의 것이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둠 속에 촛불을 든 사람들은 그들 각자의 얼굴 위에서 흔들리는 불빛과 어둠의 장중한 이중주로 결연함과 자신감을 말하고 있었다.

 

◎ 이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형스크린을 통해 정부관료들의 무책임한 모습과 촛불문화제에 대한 경찰진압장면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명박 아웃. 이명박은 물러가라. 국민안전 무시하는 정부는 각성하라. 미친소 미친정부 국민들이 미치겠다.”

참가자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열린 토론의 장도 마련했다. 당진읍내에서 나온 젊은 한의사가 먼저 일어나 참가자들을 격려하자 박수가 터졌다. 당진화력 노조간부가 ‘공기업민영화 반대’를 주장할 때 사람들도 반대를 외쳤고 한 고등학생이 ‘미국산쇠고기를 이명박대통령에게 먹여보고 멀쩡하면 그때 먹자’고 말할 때 다같이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밤 9시 50분경 축제가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모두 촛불을 들고 일어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경건한 촛불의식을 마쳤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리듬을 붙인 이 노래는 이번 광우병 파동이 시작된 이후 전국의 시민촛불문화제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은 노래였다.

이날 당진터미널 광장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웅변하기 위해 준비된 공간인 듯했다. 신터미널 광장은 ‘열린 시민의 광장’이었으며 어른ㆍ아이 할 것 없이 존엄한 개인들이 만난 ‘민주주의 놀이터’였다.

 

6ㆍ3 당진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사람들

순성면 중명아파트 김학준씨 가족

“애들 걱겅에 안나올 수 있어야죠.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아무래도 애들 학교급식이나 공공장소에 먼저 보급되지 않겠어요?” 순성면 중명아파트에 사는 김학준(43)씨는 가족들을 데리고 광장에 나왔다. 부인 정미선(38)씨도 남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엄마아빠와 광장에 나와 촛불놀이를 하고 노래도 부르는 게 재미있는 꼬마 성준(6)이가 큰소리로 누나 이름이 김수정이라고 알려줬다.

 

  아홉살 승민이와 아빠 박광석씨

“왜 나왔냐면요... 소고기 수입이 잘못돼서요.” 아홉 살 승민이는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승민이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일하는 바쁜 아빠 때문에 이날 처음 광장에 나왔다. 엄마와 누나도 함께 왔다.

“장관고시 관보게재를 유보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 국민을 속이려는 수단일 뿐입니다. 국민이 잠잠해지면 또 재개하겠죠. 그래서 끝까지 촛불집회를 통해 막아내야 한다고 봅니다.”

아빠 박광석(39)씨가 말했다.

   

  합덕읍 소소리 오점찬씨 부부

합덕읍 소소리에서 젖소 50마리를 키우는 오점찬(56)씨 부부는 그동안 촛불문화제에 몇 번 참가했다. “아주 바쁠 적에는 못나왔지만 몇 번 왔죠. 서울서 젊은 애들, 어린 애들 고생하는 거 보니까 암만 바빠도 나와야겠더라고요. 그래야 맘이 편하지요. 서울 있는 우리애도 다칠 뻔 했대요. 어른들이 해야할 일인데 아이들이 무슨 고생이에요. 글쎄...” 부인 천씨는 어른들 탓에 젊은이와 학생들이 고생이라고 연신 가슴아파했다.

 

 신평면 정미화씨와 딸 명화

  “남편이랑 젖소를 먹이고 있어요. 걱정요? 많죠. 쇠고기 협상을 다시 했으면 좋겠어요.” 신평면에서 온 정미화(39)씨는 어린 딸 명화(6)와 남편, 삼촌들과 이곳에 나왔다. 소값 때문에도 걱정이지만 어리고 예쁜 딸을 생각하면 광우병에 대한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녀는 딸과 함께 광장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촛불을 들고 있었다.

 

지난 6월3일, 광우병 쇠고기 수입 고시를 강행한 이명박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전국에 걸친 대대적인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당진터미널 광장에서도 이날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모인 250여명이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우리의 배후에는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있을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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