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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18 11:4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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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인근지역가볼만한 곳6] “‘애국’과 ‘충의’가 깃든 윤봉길 의사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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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의사 본전 사당


 여섯번째 … 예산군 충의사  


 편집자 주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여리쯤에 가야산이 있고 서쪽은 큰바다가,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못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온 맥으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고을을 내포라고 한다고 언급했다. 
 내포문화권이라고 지칭되는 이 지역은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문화와 생활형태를 보여 왔고 충남도에서는 내포문화권 개발계획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본지는 당진군과 인근 시·군?예산, 홍성, 서산, 태안)의 명소를 찾아 소개하고 보도함으로써 내포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주 5일제를 맞은 지역주민들의 여가생활에도 도움을 주고자 한다.

※본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위치한 충의사는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셔놓은 곳이다. 이곳은 1968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생가 및 성장가 복원, 유물 전시관 신축, 부흥원 복원, 동상건립 등의 중건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국가에서는 충의사를 1972년8월16일 문화재(보물 제568호)로 지정했으며 같은 해 10월14일에는 사적지(사적 제229호)로 지정했다. 또한 2000년에는 윤봉길 의사 어록탑이, 2001년에는 기념관이 건립되면서 충의사는 사적지로서의 면모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현재 충의사에는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신 본적지역, 윤 의사가 태어나서 4세까지 살았던 생가(광현당), 4세에 이사해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인 23세까지 살았던 성장가(저한당) 지역 등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기념관에는 유물 60여점과 윤 의사의 삶을 복합영상모형으로 제작, 25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윤 의사의 삶을 보다 자세히 엿볼 수 있게 마련해 놓았다.

25세에 순국한 윤봉길 의사를 기리며

 윤봉길 의사는 1908년6월21일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황공씨과 모친 김원상 여사 사이에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덕산보통학교에 다녔던 윤 의사는 기미년 3.1 운동 당시 일제의 만행에 격분,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며 스스로 덕산보통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윤 의사는 인근 마을의 서당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유학자 매곡(梅谷) 성주록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학업을 이어갔으며 16세가 되던 1923년 중추절을 맞아 열린 오치서숙의 사회에서 장원(壯元)을 했다.
 19세 때부터 윤 의사는 본격적으로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무식이야말로 나라를 잃게 한 적이라고 생각한 윤 의사는 부흥원을 설립해 야학당, 구매조합, 농민공회당의 역할을 겸하며 농민들을 계몽해나갔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0년 중국으로 망명, 그곳에서 백범 김구 선생 등과 뜻을 같이하고 함께 독립 운동을 펼쳤다. 윤 의사는 1932년4월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있었던 일제의 천장절 겸 전승기념 축하식장을 폭파하는 거사를 성공시켰으나 현장에서 체포되어 12월19일 총살형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됐다. 이때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충의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 이곳은 1968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10년 뒤 다시 중건되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낮 시간의 고요함이 이곳에서는 엄숙함으로 바뀌어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애국정신’과 ‘충의정신’의 학습장

 삼문을 지나 본전 사당으로 가는 길은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는데 길 양 옆에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무궁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당 말고도 충의사 주변에서는 만발한 무궁화를 곳곳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다. 뒤이어 찾은 곳은 윤봉길 의사 기념관으로 윤봉길 의사의 삶과 독립운동 행적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윤 의사의 성장 과정과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던 때 또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치르고 총살형으로 숨을 거두기까지를 순차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매직비전을 통해 윤봉길 의사가 살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이를 극화한 장면 등을 영상으로 볼 수 있어 보다 생동감 있고 흥미로운 관람이 가능했다. 또한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미니어처 전시물들과 유물들 역시 좋은 교육적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이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옆에 있는 어록탑을 지나 도로를 건너면 그가 생전에 살았던 생가로 연결된다. 이곳에는 윤 의사가 태어나서 4세까지 살았던 광현당(생가)과 4세 이후 중국 망명길에 오르기 전 까지 살았던 저한당(성장가), 그리고 야학회, 월진회 등 다양한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부흥원 등을 복원해놓았다. 여기에서도 무궁화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뒤쪽으로 좀 더 가보니 ‘무궁화동산’이라는 곳이 생가 터 내에 별도로 조성되어 있어 휴식처로 안성맞춤이었다.



관람안내

·관람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기념관 관람료 : 어른 1000원
                    청소년·군인 500원
                    어린이 300원
·문의: 예산군공공시설 관리사업소
        (충의사)
        337-4108, 337-5778(전화)
        041-330-2616(팩스)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서울ㆍ인천→서해대교→당진
  →해미ICㆍ홍성IC→충의사

·경부ㆍ호남고속도로
  천안IC→온양→예산→덕산→충의사

 
인근관광지
·수덕사
·남연군묘
·한국건축박물관
·덕산온천
·사면석불
·추사고택
·석조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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