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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입력 2009.09.21 00:00
  • 호수 776

[보호수의 어제와 오늘 ]⑩석문면 초락도리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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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암 절터와 함께한 보호수”

•편집자주 - 보호수로 지정된 고목들은 수백년을 이땅에 뿌리내리고 공동체의 아픔과 슬픔, 기쁨을 함께 해오며 우리의 토속신앙으로 추앙받아왔다. 그러나 보호수로 지정해놓고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고사하거나 훼손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보호수가 가진 전설과 역사를 돌이켜보며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보호수의 관리 실태를 16회에 걸쳐 보도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 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초락도리는 과거 초락도라고 불리는 섬으로 80년대 대호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고 논으로 간척되면서 육지로 변한 곳이다.
초락도리에는 수령 700여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2본이 존재한다. 초락도리 산 63에 위치해 있는 이 느티나무는 초락도리 홍씨 종중에서 관리하는 보호수다. 고려 말에는 ‘해운암’이라는 절터였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종종 청기와장이 발견되기도 한다.
현재 석문중학교에서는 청기와를 발굴해 전시·보관 중이다. 느티나무 부근에서는 청기와 조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초락도 역사 담겨있어
해운암이라는 절은 스님의 실수로 절에 불이 나 사라진 절이라고 마을주민들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절이 없어진 후 절터 뒤에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발견되고 있는 청기와 조각은 이때 불타 없어진 해운암의 기와장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푸레기 송순주 영농조합법인 홍성직 대표는 “과거 절터였다고 전해지는 이곳에는 현재 기도원이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세월이 흘러 변화된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준다”며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푸르름을 자랑하는 두본의 느티나무는 초락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나무”라고 말했다.
이 두본의 느티나무는 유독 동공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빗물로 인한 부패를 막기 위해 외과수술을 해서 막혀있는 상태지만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느티나무가 위치한 석문면 초락도리 금식기도원 김영석 목사는 “과거 느티나무 동공 안에 호랑이가 살고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며 “호랑이 울음소리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살펴보니 커다란 살쾡이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들로 이 마을 주민들은 재난을 면하기 위하여 매년 정초가 되면 나무들에 제를 올리기도 했다.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진 수세
두본의 느티나무는 초락도 금식기도원 뒤편 산림지역에 위치해 있어 일반인들의 손길이 닿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다. 초락도리 금식기도원 김영석 목사는 현재 기도원의 조경관리를 담당하고 있어 이 느티나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올해 장마때 나무의 가지가 부러지기도 했다고.
김 목사는 “외진 곳에 보호수가 위치해서 인지 1년 혹은 2년에 한번씩 관리를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며 “보다 주기적으로 보호수에 대한 관심 및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두본의 느티나무는 산 정상에서 기도원 쪽으로 나무 가지들이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진 특이한 수세를 띄고 있다. 김 목사의 말에 따르면 나무의 가지가 급격하게 기우는 방향이 추후 번창한다는 옛 말이 있다고.
그는 또 나무주변에서 발견되는 청기와 조각들을 보여주며 “비록 청기와의 조각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선명한 무늬를 띄고 있는 이 기와조각들은 역사의 증거”라며 “보호수 두본을 앞으로도 관리·보호해 초락도의 역사적 의미를 후대까지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석문면 초락도리 홍락표 씨

“호랑이 사는 느티나무” 가까이 갈 엄두도 못내

초락1리 이장을 맡았던 홍락표씨는 느티나무에 관한 전설을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초락도 토박이다.
마을과 한참은 떨어진 이곳은 당시 기도원도 없고 사람들의 발길도 잦지 않아 어린이들에게는 무서운 곳, 가지말아야 할 곳이었다.
“부모님이나 마을의 노인분들이 항상 느티나무에는 호랑이가 산다고 말씀하셨죠. 어린나이에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지만 가까이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죠.”
그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당시 섬이었던 초락도를 벗어나 길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어른들의 말씀일 거라고 추측했다. 어느 정도 성년이 되어서는 지금은 막힌 우물에서 목을 축이고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기도 했다고. 홍씨는 “당시는 물이 맑고 깨끗해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며 “잊을 수 없는 물맛과 당시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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