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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2) 신평시장 뻥튀기 상인 최상준씨] 행복도 열배로 뻥 튀기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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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때부터 50년 넘게 장날마다 뻥튀기 장사
“손님들 대게 자식걱정, 자식이야기”

[편집자주]
 ‘유흥가의 영업도 종료를 하고 동이 터올 때쯤 청소차가 지나가며 지난밤 쏟아냈던 배설물을 치운다. 그러고 나면 식품 배달차, 그리고 부지런한 서민들의 차가 지나간다. 청소를 하고, 문을 열고 물건을 배달하고…. 그렇게 도시를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바삐 움직이는 시간이다. 새벽 시간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시 화장한 사람들에게 도회지를 넘겨주고 뒷선으로 물러난다. - 여행가 이안수’
본지는 새해를 맞아 모두가 잠든 시각, 묵묵히 자신의 일터에서 세상의 아침을 준비하는 이웃들을 만날 예정이다. 인력시장에 나온 노동자, 어두운 밤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 시장 상인들.... 서민들과 동행하며 나눈 새벽이야기를 연재한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동이 튼 지 꽤 됐는데도 상인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시계를 들여다 보니 바늘이 7시를 향하고 있다. 2일과 7일은 신평장날이다. 당진에는 신평과 더불어 당진과 합덕에서 5일장이 열린다. 어르신들 이야기로는 옛날에는 장날이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보따리 장사꾼들이 새벽부터 나와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단다. 헌데 요새는 대형마트에 밀려 5일장도 예전 같지 않다.
7시가 조금 지났을까. 신평시장 백금당 맞은편에 뻥튀기 기계를 실은 최상준(금천리, 68)  씨의 작은 트럭이 자리를 잡는다. 
당진과 합덕, 신평 장날에만 장사를 나온다는 최상준 씨는 17살 때부터 뻥튀기 기술을 배웠다.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은 5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안 봐도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배우긴 누구한테 배워. 옆에서 물어가며 어깨 너머로 익힌 거지... 예전에는 참 사람 많았지. 흘린 튀밥들 주워 먹는 애들도 숱했어. 지금은 그때보다 손님이 1/10로 줄었어. 요새 젊은 사람들 누가 튀밥 먹나.”
기계에 불을 지피기도 전에 첫 손님이 쌀 포대를 들고 왔다. 신당리에서 아들을 대동하고 온 할머니는 설 명절을 앞두고 강정에 묻힐 쌀 튀밥을 만들려고 왔단다. 뒤이어 같은 마을에 사는 아저씨도 콩 한 자루를 이고 왔다. 직접 심은 검은 콩을 튀겨서 세 딸과 여동생에게 간식거리로 보내려고 한단다. 8시가 넘으니 뻥튀기 기계 두 대 앞으로 쌀이며, 콩 등 곡식 자루가 줄을 선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일부러 살 빼려고 다이어트식품으로 뻥튀기를 찾지만 몇 십 년 전만해도 뻥튀기는 가난한 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단골 먹을거리였다고 한다. 쌀이 귀했던 그 시절에는 보리쌀이나 강냉이로 튀긴 튀밥이 대세였지만 요새는 쌀과 서리태가 주를 이룬다. 튀기는 곡식 종류가 변한 것처럼 뻥튀기 기계도 변했다. 예전에는 솔방울이며 나무로 불을 지폈는데 요새는 전기모터로 기계를 돌리고 가스로 불을 지핀다. 덕분에 기계 두 대를 동시에 돌릴 수 있게 됐다. 

단골을 자청하는 한 손님은 최 씨를 ‘신평에서 제일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농번기때 농사를 짓고, 농한기 장날에는 뻥튀기 장사를, 평일에는 집고치는 일을 한단다.
동이 트자 제법 모인 손님들이 돌아가는 뻥튀기 기계를 앞에 두고 모여 앉아 세상사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대개가 자식 이야기다. 먼 이국에서 시집 온 외국 며느리 이야기, 결혼 못한 자식 걱정...  
최 씨는 “뻥 튀기가 다 될 때까지 턱받이고 앉은 손님들 열이면 열 모두 자식 이야기”라며 “손님들 대개가 용돈 주면 자식이 필요하고 아니면 필요없다고들 하더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에 “진짜”라고 씁쓸한 못을 박는다.  한 손님이 최 씨 말을 거든다.
“사실 좀 서글프긴해. 우리 때는 자식보다 부모님을 더 귀하게 모셨는데, 요새 애들은 안그러지. 자기 마누라, 자식이 먼저야.” 
‘키워봤자 용돈도 안 준다며 소용없다’는 의견과 ‘용돈 안줘도 좋으니 잘 살아주는 게 최고’라는 의견이 부딪혔다가도 자식 걱정으로 끝이 난다.
쌀 한 바가지를 기계에 넣은 지 10분쯤 지났을까, ‘뻥이요~’ 순간 귀가 먹먹해지고 뽀얀 김이 한 솥 뿜어져 나온다. 솥 안으로 들어갈 때보다 4배쯤 커진 하얀 튀밥이 그물망 한 가득이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들의 작은 희망도 뻥 튀기 기계에 넣고 돌려 두세배쯤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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