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기지시줄다리기와 함께한 70평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의 맥을 잇는 사람들①
기지시줄다리기 줄제작 기능보유자 인간문화재 장기천 씨
“전통 이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난장’ 벌어지던 옛 기지시줄다리기 역사의 산증인

[편집자주]
 40톤이 넘는 200미터 길이 줄을 사람의 손으로 꼬아 만드는 기지시줄다리기. 본지는 중요무형문화제 제 75호 기지시줄다리기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기지시줄다리기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 봤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줄다리기를 지켜나가고 있는 이들의 인터뷰가 연재된다. 올해 기지시줄다리기 축제는 4월7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내가 어릴 적에는 기지시줄다리기가 열리는 날은 기지시 시장에 ‘난장’이 벌어졌었어. 당진 사람은 물론이고 인근 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 그때는 큰 줄을 기지시 사람들이 만들고 잡아당기는 작은 줄들은 마을에서 각자 만들어 가지고 왔었어. 그 당시에 차가 어디 있어. 한진부터 꼰 줄을 어깨에 둘러메고 줄을 다리러 기지시까지 걸어 왔었지. 물 아래 사람도 물 위 사람도 모두 승부욕이 대단했지.”
진눈깨비가 내리던 지난 9일 줄다리기 제작 현장에서 만난 장기천 씨는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어릴 적부터 줄곧 지켜봐왔던” 기지시줄다리기의 옛 모습을 회상했다.
2001년 기지시줄다리 보유자로 지정된 인간문화재 장기천 씨는 17살때부터 기지시줄다리기 제작 과정에 참여해 70평생을 기지시줄다리기와 함께 해 온 산 증인이다. 유일하게 기지시줄다리기 줄제작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장 씨가 줄다리기와 연을 맺게 된 것은 “전통이 끊어질 것이 걱정돼서” 였다.
“예전에는 큰 줄을 만들 때면 안섬에 사는 뱃사람을 모셔다 만들었었어. 다른 건 다 기지시 사람들이 하는데 큰 줄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어. 문득 저 분이 안계시면 줄을 못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그때부터 유심히 봐 뒀지.”
장 씨에 말에 따르면 30여년 전만해도 기지시줄다리기에 참여하기 위해 당진 곳곳에서 농기를 들고 기지시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농기를 가져오면 황소 송아지를 받을 수 있는 추첨권을 나눠줬었어. 마을마다 송아지를 받으려고 농악대를 앞세우고 기지시로 모였지.” 
예나 지금이나 기지시줄다리기에 가장 큰 일은 줄을 만드는 일이다. 40톤이 넘는 줄을 일일이 사람이 짚으로 꼬아 만들어야 하니, 보통 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때라 줄 만드는 일도 어려웠어. 마을 상가를 돌며 조금씩 후원비를 모금해서 줄 제작 인건비로 쓰곤 했지. 큰 줄을 만드는 날이면 인근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후원해 줬었어. 그럼 여기저기서 막걸리 한사발을 얻어 마시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지. 한잔씩들 나눠 마시고는 함께 줄을 만들었어. 큰 줄을 만드는 날은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였지.”
줄 만드는 일이 힘든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짚으로 줄을 만들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뿐더러 농사짓는 젊은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누가 어려운 일 하려고 들어야지. 그래도 전통을 이어간다는 생각으로 나와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명맥이 이어지는 거야.”
장기천 씨는 기술을 전수받을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젊었을 때 줄다리기를 함께 만들었던 또래들이 30여명은 됐었어. 세월이 흐르면서 먼저 세상을 뜨기도 하고 몸이 아파 줄 만드는 일에서 손을 떼었지. 이제는 구자동 회장과 나만 남았는데 내가 죽고 나면 전통이 끊어질까봐 걱정이야. 기술을 전수받을 젊은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할 텐데 말야.”
인터뷰를 마친 장 씨는 다시 줄다리기 제작 현장으로 돌아갔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