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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기지시줄다리기와 함께 해 온 ‘줄다리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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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우영 회장과 함께 무형문화재 지정 이끌어
전통의 맥인간문화재 구 자 동 기지시줄다리기 보존회장을 잇는 사람들 - 마지막회

[편집자주]
40톤이 넘는 200미터 길이 줄을 사람의 손으로 꼬아 만드는 기지시줄다리기. 본지는 중요무형문화제 제 75호 기지시줄다리기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기지시줄다리기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 봤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줄다리기를 지켜나가고 있는 이들의 인터뷰가 연재된다. 올해 기지시줄다리기 축제는 4월7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도 참 미련했었던 거 같아. 일생을 줄다리기 하나에 쏟았으니....”
인간문화재 구자동 회장은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40여년 가까이 함께 해온 기지시줄다리기를 되돌아봤다. 20대 초반 고 이우영 초대 보존회장과 인연이 닿아 시작한 기지시줄다리기였다.
“이우영 선생님을 모시고 어르신들 찾아다니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기지시줄다리기의 역사와 본래 모습을 들었었지. 그때는 녹음기도 시원찮아서 일일이 손으로 받아 적어야 했었어. 들은 이야기들은 타자를 쳐서 서류로 만들고 자료를 정리했지. 그렇게 발품 팔아 줄다리기의 체계화를 이뤄낸거야. 76년도에 도지정을 받고, 79년도에 충남 민속자료로 지정을 받았지.”
구자동 회장은 1982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 고 이우영 회장과 함께 줄다리기의 전통을 잇기 위해 발로 뛰며 노력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후로 이우영 선생님이 작고하셨어. 줄다리기를 놓아버릴 수도 있었지만 이왕 몸 담은 것 멋지게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줄다리기는 너와 나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거거든. 그 뜻이 상당히 좋았어.”
20대 초반부터 오로지 ‘줄다리기맨’으로 살았다는 구자동 회장은 시간이 갈수록 후배들이 늘어나지 않는 것이 걱정이다.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전승자가 많지 않아 걱정이야. 그래도 뜻있는 젊은이들이 전승자로 함께 하고 있지만 말야. 앞으로 남은 생은 후진양성에 더 힘쓰고 싶어.”
2010 기지시줄다리기 축제를 마친 구자동 회장은 성공적으로 축제를 치러냈다고 평한 반면 여전히 아쉬운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며 조금씩 더 발전해 나가는 줄다리기축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인지 막바지에 줄다리는 사람들이 처음보다 줄어들어서  좀 아쉬웠어. 길놀이 구간이 좀 긴 거 같기도 해. 줄제작장이 어디로 정해질 지는 아직 모르지만 길놀이 구간을 축소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작년보다 체험문화나 볼거리들이 더 많아져서 관광객들의 참여가 더 좋았던 거 같아.”
언제나 행사를 하고 나면 뿌듯한 마음 만큼 아쉬움도 있다는 구자동 회장은 인생도 기지시줄다리기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기지시줄다리기 세계화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후진 양성에도 더 힘을 쏟고. 나는 평생 줄다리기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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