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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1.01.17 22:51
  • 호수 844

[강우영 바르게살기운동 당진군협의회장] 사회기풍 대혁신 운동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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兄에게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던 초가을 형이 보내준 편지 잘 받았어.
이렇게 해를 묵혀 답장하니 섭섭하지? 성의가 없는 것이 아니고 요즘 바르게살기운동에 열중하다보니 눈코 뜰 새가 없어서 미안해.
참, 지난번 편지에 바르게살기운동이 무엇 하는 단체냐고 물었지? 이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단체라고 생각해 우리 바르게살기운동은 1989년 4월 1일 서로 믿고 사랑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건설을 위해 진실, 질서, 화합을 이념으로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현장중심의 실용적이며 창조적인 바르게살기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문화국민의식의 함양과 선진국형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출범하여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
지난해 우리 협의회에서도 다문화가정에 전통예절 전수하기, 환경정화를 위한 쓰레기 줍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학교폭력 줄이기, 교통사고 줄이기, 산불조심캠페인 그리고 여성도의교실과 학생도의교실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했어.
이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학생도의교실이라고 생각해. 요즘 일부 초, 중, 고생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진 심각성이야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일부는 우리 기성세대가 책임져야할 몫도 있다고 생각해. 형이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었지. 65년 전 해방의 기쁨도 잠시 6.25라는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그 전쟁의 폐허 속에 초근목피로 연명해야하는 가난, 그 가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세상에 제일 넘기 힘든 고개가 보릿고개라며 이 가난을 자식들한테 물려 줄 수 없다고 양지말 영철이 아버지는 서독 광부로 돈 벌러 갔었다지. 그 뒤로 영철이 큰누나도 서독 간호사로 갔다는 말은 들었지만 알고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백의천사 그런 사치스런 직업이 아니었대.
간호사들은 알코올 솜으로 차디찬 시체를 닦았고 광부들은 1000m 이하 막장에서 섭씨38도의 지열을 참아가며 하루12시간이상 석탄 캐는 고생을 했었다지! 그들을 위문하기 위해 1964년 故박정희대통령 내외는 그곳에서 연설 중 애국가가 나오자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전전으로 들은 이야기라 했지! 그 노동자들의 임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농촌에 초가지붕부터 걷어 내리고 슬레이트지붕으로 개량하기 시작한 것이 새마을 사업의 원조가 됐다더군!
그후 내 건너 수영이 형은 돈 벌어 황소 사온다며 월남전에 지원했다가 시체로 돌아오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비단 우리 동네 이야기만은 아니었지. 이렇게 해서 피를 팔고 목숨과 바꿔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는 등 우리 아버지, 삼촌, 누나, 형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반죽해서 놓은 한강다리가 2년에 하나 꼴로 하나밖에 없었던 다리는 29개로 늘어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보니 이 모두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은 것으로 착각하는 젊은 세대야 못 봤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몸소 겪은 우리세대도 일부는 까마득히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한숨 쉬던 형의 모습이 선해.
형. 지난 9월 10일은 당진읍사무소 회의실에서 음식쓰레기의 심각성에 대해 신성대 윤종호 교수 초청강의도 들었어. 거기서 들은 얘기지만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나오는 음식쓰레기가 2007년도 기준 1만5000톤이라는데. 이를 처리하기위한 비용만도 연간 18조원에 달한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어 우리도 정신 못 차리고 흥청망청 이대로 살다가는 지금의 필리핀이 될 수도 있다며 걱정의 한숨을 내쉬던 지난 여름밤은 유난히도 무더웠었지!
앞으로 이 나라의 기둥이 될 우리 청소년들이 아버지, 할아버지 대에서 공돌이, 공순이 소리 들으며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위해 잠 안 오는 약까지 먹어가며 미싱을 돌리고 기계를 깎아 오늘의 이 풍요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기성세대 특히 사회 지도층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하던 형의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러웠어!
더욱이 앞으로 10년이 고비라며 이 위기의 10년을 잘 넘기기 위해선 지금처럼 가마 타는 즐거움만 좋아하지 말고 가마 메는 괴로움도 배워야한다고 부디 GNP 2만불을 운운하며 터트린 샴페인이 눈물로 흐르지 말고 이 민족에 앞날을 밝히는 촛불로 녹아내리길 빈다던 형의 편지는 오늘도 고향의 많은 가슴마다 읽히고 있습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고향에서 弟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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