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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입력 2011.01.22 00:09
  • 호수 845

[사랑을 나눠주세요(3)- 합덕읍 운산리 이옥하 씨] “빈집서 홀로 베개에 얼굴을 묻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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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수술로 왼쪽 폐 절단
최근에는 병명 알 수 없는 통증까지 찾아와

이옥하 씨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봄날이었다. 당시 본지 문화면에 연재됐던 ‘당진작가들의 시한편’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3년 전 그녀의 삶은 누가 봐도 ‘열심히 산다, 부지런하다’ 할만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척추결핵을 앓아 척추 3개를 떼어낸 이후로 몸이 성치 않은 그녀는 남의 집 살림을 도와주고 받은 돈으로 두 딸을 키우고 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시를 쓰며 긍정적으로 사는 그녀의 이야기는 퍽 인상깊었다.(본지 702호)
이 씨의 소식을 다시 접한 건 남부행복나눔센터 사회복지사로부터였다. 어려움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다고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이 씨의 집이었다. 지난 3년간 그녀는 왼쪽 폐를 모두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이후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하지만 매일 회사에 내야하는 금액도 벌지 못하는 날이 숱하다. 이씨가 번 돈이 생활비의 전부였던 셈인데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생계가 막막해졌다.
“감기를 앓았는데 한 달이 넘도록 나아지지 않는 거예요. 약을 먹어도 소용없고 일을 하러가도 조금만 움직이면 진땀이 나고요. 어느 날 목에서 피가 나더라고요. 큰 병원에 가보니 폐에 손톱만한 종양이 있다는 거예요. 모아둔 돈을 모두 수술비로 썼어요. 헌데 종양이 다시 폐 전체로 번져 두 달 만에 다시 재수술을 해야 했어요.”
두 번째 수술에서 이 씨는 왼쪽 폐를 모두 떼어냈다. 수술비는 군에서 긴급생계지원비를 지원해준 덕에 치를 수 있었다. 헌데 문제는 퇴원 이후였다. 이씨를 돌봐 줄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남편이 직장에 나가면, 매일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빈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정말 힘들었어요. 매일 혼자 빈 집을 지켜야 했어요. 몸은 아픈데 밥 한 끼 챙겨줄 이가 없으니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매일같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몸이 점차 회복될 때 쯤, 다시 고통이 찾아왔다. 무릎, 손가락 마디마디가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동네 의원에서 혈액검사를 했지만 병명을 알 수 없다고 했단다. 큰 병원에 가야한다고 해 얼마 전 천안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 둔 상태다. 의사는 서울로 가야한다고 했지만 오가는 교통비 때문에 가까운 천안으로 간다고 했다.
“밤마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일어서고 앉는 것도 힘들어요. 무릎에 백근짜리 쇳덩이를 달아 놓은 것 같아요. 병원에서는 류마티스나 루프스 같은 관절병같다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이제 좀 나아지나 보다 했는데...”
없이 살아도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씨지만 몸 아끼지 않고 일만한 지난 세월이 떠올라 자꾸 서글퍼 진다.
“남의 집 일을 다니면서도 시간이 나면 집 주인 몰래 다른 일을 다녔어요. 주인집 아침까지 해줬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을 나갔거든요. 그리고 잠시 짬이 나는 오후에도 쉬지 않고 일 했어요. 김장 도와달라면 잠깐 가서 김장해주고, 청소 도와달라면 잠깐 가서 청소도 해주고 그랬어요.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야 두 딸내미랑 먹고 사니까...”
이 씨의 목이 멘다.
▶ 도움을 주실 분을 찾습니다.
- 이 씨에게 필요한 지원
: 생활비, 의료지원, 병원 교통편 등
- 후원계좌 : 농협 301-0065-6215-91
예금주 : 사회복지협의회
▶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의 사연을 제보해주세요.(당진시대 355-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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