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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입력 2011.04.12 21:54
  • 호수 855

[ ■기획취재 - 구제역... 그 이후] 끝나지 않은 구제역, 축산농민 고통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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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만큼 사람 피말리는 일 없었다”
입식에서 출하까지 2년 가까이 소득 없는 생활해야

봄의 기운이 대단하다. 지난 겨울 유독 추웠던 만큼 길가에 난 풀 한포기, 작은 꽃 하나마저도 봄기운이 물씬 난다. 농민들도 밭으로 들로 겨우내 묵었던 먼지를 털어내고 또 다시 농촌의 일상이 시작됐다. 구제역 농가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축사를 재정비 하고 입식을 위한 환경 정리에 나섰다. 아직은 지하수 문제와 보상금이 걱정이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농가들을 다녀왔다.

구제역으로 합덕읍과 순성면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지난 1월 5일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을 당시에는 돼지나 소나 예방접종 전이라 반경 500m 이내 가축들도 살처분 됐었다. 마을길이 방역으로 차단되고 버스마저 운행되지 않았던 전과 달리 합덕읍 석우리와 순성면 나산리, 광천리 일대는 이제 버스도 다니고 주민들의 왕래도 활발하다. 이동제한으로 옮기지 못했던 가축 분뇨는 밭으로 옮겨져 동네에는 고향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당진군 내에서 2번째로 구제역 양성판정을 받은 박영진(합덕읍 석우리)씨 농장 입구 거름 막사에도 인근 주민들의 경운기들이 여러차례 다녀갔다.
3250여마리 돼지를 2대째 키워나가던 박영진씨의 농장은 외국인노동자를 포함해 5명의 직원들이 일했던 곳이다. 농장 맞은편 매몰지는 허한 가슴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당진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지 나흘만에 어미돼지 한 마리 배에서 물집이 보이더라고요. 혹시나 싶어 하루 기다려보자 하다가 수의사 분이 구제역 신고를 했죠. 다음날 가축위생팀장님이 공무원, 주민들 모두 데리고 오셨는데 저는 바깥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작업 참가자들이 다 아는 사람인데다가 내 눈으로 묻는 걸 직접 볼 자신이 없어서 하루 종일 방안에 있었죠. 그래도 들리는 소리는 어떻게 안되더라고요.”
지금이야 담담히 말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직원들과 박영진씨 모두 그날 이후로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직원들도 하루아침 새에 직장을 잃게 돼 실업자가 됐다. 박영진씨가 퇴직금과 위로금을 주며 다른 살길을 찾아보길 권유했지만 3명의 직원이 남기로 했다고 한다. 오는 10월이면 돼지를 키울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재개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나름의 살풀이도 했다. 떡과 막걸리를 두고 제대로 키워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3250여마리가 묻힌 매몰지에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낸 날 밤, 박씨와 직원들은 매몰 이후 가장 깊고 편한 잠을 이뤘다고 했다.

“축산업 싫어요” 주민 간 갈등심화
박 씨에게 또 다른 구제역의 휴유증은 죄책감이었다. 나로인해 구제역 균이 마을로 옮겨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 씨의 농가가 자리 잡은 합덕읍 석우리에서 박 씨의 농장을 시작으로 6개 농가가 2월까지 구제역이 발생했다. 마을 내 7집이 구제역에 걸리자 이웃 간 왕래도 사라지고 대화도 줄어들었다. 축산농가와 일반 주민과의 갈등은 석우리뿐만 아니라 우강면 송산3리와 순성면 나산리 일대를 돌아보니 축산업을 반대하는 플랜카드가 마을 곳곳에 걸려 있었다.
‘돼지똥 냄새가 싫어요. 재입식 반대’ 표어도 다양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거주는 다른 시, 도에 하면서 축사만 당진군에 설치한 농장업체를 탄압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료값, 돼지종자값 일제히 상승
한편 구제역이 오지 않은 농장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송산면 부곡리 한인석씨는 구제역 때 얻은 불면증으로 아직도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 40여년을 돼지를 키워왔지만 이만큼 어려웠던 적도 없었다. 직선거리로 약 1km 내에 있는 농장에서 양성판정을 받아 전부 살처분 됐으니 겨우내 살얼음판을 위에서 사는 심정이었다.
“내가 군에서 가장 크게 양잠을 했었지. 뽕나무를 키우려면 거름이 필요해서 그 때부터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돼지를 산에서 주워다 키운다’할 만큼 곤두박질 칠 때였어요. 사료값은 오르고 돼지는 크니까 산에다 몰래 버리는 집도 있었지. 그래도 구제역만큼 사람 피 말리는 일은 여태 없었어요. 군에 출하신청을 해서 2월말에 출하했는데 손해가 막심해요. 돼지값은 돼지값대로 덜 받았지. 늦게 출하해서 사료값이 더 들었는데 사료 1kg 당 30원이상 인상됐어요. 우리 집은 논 농사도 같이 하는데 쌀은 쌀대로 적자고 돼지는 돼지대로 적자이니 힘이 날 리가 없죠.”

가격 상승에 어림없는 보상금
구제역 피해 농가에 대해 총 보상비의 약 30%가량은 대개 농가에 따라 당장의 생활비나 사료값으로 지불됐다. 보상비로 입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만 사료값이 지난해 같은 때와 비교 했을 때 1kg당 45원이 인상됐으니 벌크 차량으로 사료를 구매할 경우 20만원 가량 인상된 셈이다.
후보돈의 경우도 구제역이 오지 않은 지난해 마리당 53만원에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90만원에 사겠다고 해도 종자가 없어서 사기 어려운 형편이다. 후보돈을 구해도 안정을 찾고 교배를 해서 새끼가 상품화 되기 까지 과정도 최소 1년 3개월이 걸린다. 축산 농가들은 2년 가까이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은 상황이 돼 버리는 것이다.
합덕읍 이모씨는 “보상금이 정부에서는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맘 때 시세와 입식에서 출하까지 걸리는 시기를 생각하면 결코 큰돈도 아니다”라며 “입식해서 키우는 동안도 계속 투자를 해야 하고 1년 몇 개월 후 출하시기도 같아져서 경제적 여파는 몇 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안한 지하수, 내색하기 미안”
농민들의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지하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상수도 보급률이 낮은 당진군에서 상수도 보급되는데 걸리는 시간 동안 식수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박영진씨는 “그동안 지하수를 마셔왔지만 가축 매몰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해썹 인증과 같은 농장의 인증절차를 위해서는 지하수 관리가 철저해야 하다보니 개인적으로 검사를 받을 생각”이라며 “지금은 그냥 마시고 있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민 류모씨는 “다 이웃들인데 냄새난다고 하기도 그렇고 물 마시기 겁난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미안한 상황”이라며 “전 에는 지하수라 좋은 물이라며 그냥 마시곤 했는데 지금은 꼭 끓여 마셔도 걱정되니 당진군에서 빨리 간이상수도라도 대책을 세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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