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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12) - 어기구 당진사회경제시민포럼 준비위원장] “기초노령연금, 제가 입안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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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살려 ‘당진을 모범도시’로 민드는데 일조하고 파
“사회 양극화, 갈등 부추기는 현 정권에 실망과 분노”

소위 ‘운동권’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저마다 사연이 많다. 군부 독재 시절과 전두환 정권을 지내며 격렬한 사회변화를 몸으로 겪었던 이들은 불합리한 사회를 바꿔보고자하는 의지를 지녔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386세대’라고도 불렸던 이들은 지난 참여정부 때 정권의 전면에 나서며 여러 가지 사회개혁을 주도했다.
그 386세대의 일원이며 대학 재학시절 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 군부 독재를 끝낸 ‘6월 항쟁’을 주도한 사람 중 하나였던 어기구(50) 당진사회경제시민포럼 준비위원장. 홀홀단신으로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에서 유럽의 사회복지정책을 배운 뒤 10여년만에 졸업한 그는 참여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을 4년여 지냈다.
그외에도 중앙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온 그는 이제 고향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며 정책제안을 위한 포럼을 조직하고 활동에 나섰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은 전세계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대학이다. 중앙 유럽에서도 3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육·연구기관이기도 하다.
1365년 세워진 이 대학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다 1700년대에 신성로마제국의 교육개혁에 의해 부활되고 의학·법학·역사학 등의 분야에서 빈학파를 형성해 그 이름을 떨쳤다.
어기구 위원장은 “1991년에 배낭 하나만 메고 오스트리아로 무작정 건너갔다”며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오스트리아로 갈 결심을 한 것은 그의 말처럼 배움 때문이었다. 순천향대학교 재학 시절 격렬한 학생운동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독재가 끝나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한동안 고뇌에 빠졌다고 한다. “과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놓고. 그리고 3년 뒤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배워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개발에만 치우쳤던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저같은 일반인들을 위해서는 복지가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복지 선진국에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은 학비가 없다. 입학도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 문이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졸업은 달랐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했다고 한다. 학비는 없었지만 생활비는 필요했다. 빈 국립대 상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데 11년하고도 2개월이 더 걸렸다. 당당하게 이력서에 한 줄을 더 넣을 수 있었다. ‘졸업’이라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 입학 및 수료는 많지만 졸업이라고 써 있는 이력서는 당진에서 그를 제외하고 김현욱 전 국회의원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2002년 한국에 돌아오자 곧 세상이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들어섰다. 사회복지와 경제 분야, 특히 노동계와 관련된 분야를 전공한 그를 정부에서 중용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출범시킨 대통령 직속 노사정위원회는 참여정부에서 그 기능과 역할이 강화되었습니다.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은 국회에서도 이의를 달 수 없었습니다. 노동자들과 고용주가 정부의 중재 아래 합의한 것이니 뭐라고 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지요.”
4년여간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일하며 ‘조율자 역할’을 맡았다. 유럽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때론 ‘노’를 대변하고, 때론 ‘사’를 두둔하면서 중재 역할을 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정책제안서을 자주 내밀었다. 기초노령연금과 산재보험 등의 제도가 그의 제안으로 현실화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그도 바뀌었다.

“당진을 모범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대통령직속 노사정위원회에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 그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서 어기구 대표는 이미 물러난 상황. 그는 “이명박 정부에 실망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사회분열의 주범인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단순히 노사정위원회만을 놓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 전공이 사회복지입니다. 비정규직 문제, 고령자 문제. 특히 임금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실태는 정부에서 나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현 정권에서는 해결할 의지도, 노력도 없습니다.”
빈 국립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을 때 제출했던 논문도, 그 이후에 학술대회와 각종 기고에서 한결같이 밝혔던 그의 주장이었다. 사회안전망과 노동·사회정책의 현황과 과제. 경제위기의 저소득층 보호정책 등은 전 정부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것이었다.
“한 때 정치권 출마를 고려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권에 가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제 상황이 공부를 병행해야 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당진을 모범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전 세계 수많은 인재들과 교류했고 이제 그들이 각 나라에서 지도층 인사로 성장했다”며 “경험과 정책을 가진 제가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라고 여겨 귀향을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향에 내려와 당진사회문화포럼을 구성한 것도 정책제안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출범식 이후 곧바로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이인영 최고위원 등을 초빙해 강연회와 포럼을 지속적으로 열 것”이라며 “고향 당진군이 난개발도시가 아닌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력
-1962년 송악읍 고대리 출생
△상록초-송악중-천안북일고-순천향대 졸업
△오스트리아 빈 국립대학교 경제학과 사회과학대학원 졸업
△오스트리아 빈 상경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졸업(경제학 박사, 2002년)
△대통령직속 노사정위원회 사회소위원회·경제소위원회 전문위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현)
△경제위기 극복위한 독일의 대응방안 연구, 사회통합을 위한 정부의 노동·사회정책의 현황과 과제 등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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