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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셋째 아들, 심재호가 말하다 1 “필경사는 꽃동산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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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에 핀 목백일홍, 불도화, 겹벚꽃나무 모두 기억

[편집자주]

 심훈의 셋째 아들 심재호 씨가 평생토록 모으고 간직한 심훈의 유품 4천5백여 점을 미국에서 당진으로 이전해 오기로 약속했다. 본지는 그 과정을 지켜보고 보도하면서 새삼 ‘기록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심훈의 육필원고에는 일본인들이 시뻘건 줄로 검열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이 평생토록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방대하고 중요한 유적인가. 역사를 경험한 이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은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심재호 씨가 한 달여간 당진에 머물며 심훈 육필원고를 총정리한 뒤, 지난 15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평생토록 아버지 심훈의 발자취를 쫓았다. 심훈의 유품을 모으고 관리하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았다. 그 자신도 아버지 심훈을 빼닮은 삶을 살아왔다. 군사정권시절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스스로 그만두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이산가족찾기운동으로 북한을 수시로 오갔다. 심재호 씨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가 기억하는 필경사와 공동경작회, 아버지 심훈의 육필원고를 모으게 된 과정 등에 대해 듣고 기록한 것을 연재 보도한다.       


“필경사는 그야말로 꽃동산이었죠. 여기에는 붉은 꽃이 피는 목백일홍이 있었어요. 그리고 여기에는 매화가, 여기에는 불도화가 있었죠.” 필경사 앞마당에 선 심재호 씨가 7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어젯밤 이야기를 하듯 이어갔다. 나무하나 풀 한 포기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말투다.
그는 필경사에서 태어났다. 심훈의 대표작 <상록수>가 태어난 그 집이다. 그가 태어나던 1936년, 아버지 심훈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 심훈이 남기고 간 필경사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6.25 전쟁 등의 이유로 고향과 서울을 수도 없이 오가며 살았다. 그러나 서울에 살면서도 방학이면 사촌 형들과 할머니가 사는 고향 부곡리에 내려와 지냈다.
“우리 가족들은 필경사를 ‘새 집’이라고 불렀어요. 필경사 뒤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큰 집이 있어요. 우리는 거기에 살았죠. 큰 집에서 <영원의 미소>, <직녀성>이 쓰였어요. 필경사에는 김태룡 씨라고 동네분이 살았어요. 공동경작회 회원 중 한 사람이죠. 16년을 그분이 살았을 거예요. 그래도 우리가 집 주인이니까 매일 같이 필경사 앞마당에서 놀았어요.”
심재호 씨는 필경사 앞마당에는 아버지 심훈이 심은 꽃나무들이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벽오동, 매화, 목백일홍, 불도화, 찔레꽃, 겹벚꽃나무, 향나무가 차례로 울타리를 만들었단다.  특히 찔레꽃으로 만든 아치가 대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김태룡 씨가 16년을 살고 그 뒤로 교회에서 사용하다가 빈 집으로 비어 있다가... 필경사도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 초가집이었다가 양철지붕으로 바뀌고 기와지붕으로 바뀌고 이제야 다시 초가지붕이 되었지요. 기둥도 다 쓰러지고 허물어졌었는데 당진군과 주민들이 다시 손을 써서 복원이 되었어요.”
그는 어린시절 필경사 앞마당에 심어져 있던 꽃과 나무 이름을 적어 주면서 심훈 묘소 뒤에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필경사 오른편에는 단칸방으로 행랑이 한 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으니 대신 정자를 놓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필경사 입구에 느티나무를 하나 심어달라고 당부했다.
“느티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전부터 농촌 사람들이 사랑했던 나무예요. 무럭무럭 크게 잘 자라서 그늘을 만들어 주거든요. 그늘이 있으면 거기에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예요. 누군가는 심훈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심훈기념관 앞 느티나무에서 앉아 놀았다고 이야기하겠죠.”

 

●글 싣는 순서


1. 심재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필경사

2. 아버지 심훈의 육필원고 모으게 된 과정
3. 심훈의 첫 영인본 발행 과정
4. 심훈 선생의 주변인물과 <박군의 얼굴>에 얽힌 이야기
5. 아버지 심훈 빼닮은 심재호의 삶 1
6. 아버지 심훈 빼닮은 심재호의 삶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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