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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이야기 9-폐지수집상 박부용 할머니]
20년 동안 폐지 주워 온 꼬부랑 할머니

“아들, 딸 뭐하냐고?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 하는 겨!”
이틀을 꼬박 주워서 버는 돈은 12,000원
우현선l승인2012.03.21 22:24l(9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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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손사래 치며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갖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이동권 씨의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를 모티브로 당진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꼬부랑 할머니가 몸집보다 더 큰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뒤지고 있다. 어스름 새벽녘,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구멍가게 앞 쓰레기더미에서 박스며 신문지를 꼼꼼하게 챙긴다. 바지런히 돌아다녀 보지만 오늘은 영 소득이 시원치 않다. 요즘에는 무슨 조홧속인지, 폐지 줍는 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잘 살았다고 멀쩡한 신들도 내다 버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폐지라도 주워 먹고 살겠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할머니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당진시내 터줏대감들 치고 박부용 할머니를 모르는 이들이 없다. 이름과 사는 곳은 몰라도 ‘폐지 줍는 꼬부랑 할머니’라고 하면 다들 ‘아~ 그 양반’하고 금세 아는 체를 한다. 할머니가 폐지를 주운 지도 벌써 20년이다.

“세상에 거저 얻는 건 하나도 없어”

할머니는 새벽 6시30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곧장 리어카를 끌고 길을 나선다. 몇 년 전만해도 일어나서 집안일도 하며 한두 시간씩 쉬다 나가기도 했지만 요새는 그럴 정신이 없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박스나 신문지 같은 폐지를 집 밖에 내놓고 돌아서면 벌써 주워 가고 없어. 어쩔 때는 박스 한쪽도 못 주울 때가 있어. 그러니 사람들 없을 때 일찌감치 한 바퀴 돌고 와서 아침을 먹지. 남들은 내다버리는 폐지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한쪽이라도 거저 주는 줄 알어? 다, 내가 그만큼 움쩍거리고 다녀야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겨.”
할머니는 하루에도 수차례 당진시내를 돈다. 리어카 한가득 폐지를 주우면 55kg 정도다. 요새 박스 1kg에 120원이니 리어카 위로 수북이 주워 100kg가 되어야 손에 쥐어지는 돈은 12,000원이다. 100kg를 주우려면 이틀 넘게 발품을 팔아야 한다.
“돈 바라고는 못해.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조금씩 벌어서 용돈이라도 쓰려고 하는 거지. 내 힘으로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거여. 움쩍거릴 수 있을 때까지는 내 손으로 내가 노력해서 먹고 살아야지 않겄어? 그리고 일 하던 사람이 일 안하면 병나는 법이여~.”
 
“여관 청소, 폐지 주워 5남매 키웠지”

할머니는 꽃다운 22살에 서산 고향을 떠나 당진으로 시집을 왔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마냥 하얗게 샐 때까지 5남매 키우고 남편 봉양하며 살았다. 할머니 말로는 할아버지는 당진시내 사람들이 모두 알 정도로 선비 같은 분이었단다. 덕분에 5남매 건사하고 돈을 벌어오는 일이 모두 할머니의 몫이었다. 시유지 위에 지은 집 한 칸이 전부였던 할아버지에게 시집와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할머니는 여관에서 청소 일을 했다. 저녁이면 집에 들러 할아버지 저녁상을 차려드리고는 또 다른 여관으로 청소 일을 하러 갔다. 폐지를 줍기 시작한 것도 여관 청소를 할 때였다.
“예전에는 폐지를 모아다 고물상에 가져다 주면 비누로 바꿔 줬어. 점심 먹고 잠깐 쉴 때, 여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폐지를 모으면 비누라도 얻어 쓸 수 있겠더라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았다는 할아버지가 10년 전, 중풍과 치매로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는 혼자 살고 있다.  
“참말로 호록한 신사였어. 돈벌이라고는 통 모르던 선비였지. 그러니까 내가 더 힘들었지. 젊어서는 괜찮았는데 나이 들어 힘들 때는 더러 원망도 됐어. 그래도 할아버지가 평생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가정을 등한시 하지는 않았어. 그래서 그런가, 지금은 서운스런 마음 같은 건 없어.”

“아들, 딸 없냐고? 사서 고생한다고?”

할머니는 몇 해 전 도로가 나면서 살던 집을 헐고 새로 지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래층은 세를 주고 홀로 사는, 2층에는 한기가 가득이다. 비싼 난방비 낼 엄두가 나질 않아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사람들이 별 말을 다하지. 어떤 사람은 집도 있는 할매가 집 없고 어려운 사람들이나 하게 놔두지, 폐지를 줍는다고 뭐라고 해. 또 어떤 사람은 ‘자식들 없슈~’ 허리 꼬부러진 할매가 먹고 살려고 바둥거린다고도 하고. 그럴 때면 그냥 ‘예~’하고 말어. 도둑질 안하고 내가 벌어 내가 먹고 사는데, 뭐 모르고 하는 소리 마음에 담을 필요가 없지.”
할머니는 “5남매 다 커서 제 가정을 꾸렸으면 그때부터는 자기 자식 키우고 먹여 살리는 데 신경을 써야한다”며 “우리 애들도 고생 말고 서울 가서 같이 살자고 하는데, 어미가 혼자 먹고 살 길이 없다면 모를까 아직까지는 내가 일을 할 힘이 남았으니 각기 사는 게 서로 편타”고 말했다.
“자식들이 주는 돈 받아서 살면 편할 것 같아도 안 그래. 옛말에 두 톨 먹고 한 톨 벌어 산다는 말이 있어. 좀 부족해도 뭔가 한다는 집념을 갖고 살면 되는 거야. 좌절해서 주저앉으면 소용없지. 오늘 일하고 내일 죽더라도 사람은 일을 하며 살아야 혀.”
할머니의 소원은 “지금처럼만 일하며 살다가 자식들한테 폐 안 끼치고 아프지 않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욕심을 조금 더 보탠다면 세상을 떠날 적에 자식들이 “‘우리 엄마 3년만 더 살다 가시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고생 안 시키고 떠나는 일”이다.


우현선  mirina16@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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