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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문화, 인류무형문화유산3 (사)남사당
“서민의 애환과 울분, 놀이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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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수성 담아 유네스코 등재
새로운 전통 만들기 위한 발전 거듭

▲ 사물놀이의 한 장면

[편집자주] 500년 간 이어져오고 있는 당진 기지시줄다리기의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 등록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내외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찾아가  유네스코 지정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과 문화제 보존에 대한 의미, 무형문화제 보전의 가치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이 기사는 충남도 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인 연기자 이준기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 ‘왕의 남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소재가 된 남사당패가 벌인 아슬아슬한 줄타기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조선 중·후반기 서민사회에서 자연 발생한 민중놀이 남사당은 이후 1920년대까지 농촌과 어촌을 돌며 놀이판을 벌였는데 이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외래 놀이문화인 서커스와 함께 일제치하의 시대상이 그들의 설 자리를 앗아갔기 때문이다.

 

 

▲ 아슬아슬한 줄타기 장면
이런 전통문화인 남사당놀이의 맥을 잇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사)남사당이다. 남사당은 남사당패라고도 불리는 유랑예인 집단이다. 국내 대표적인 유랑예인 집단은 남사당패 이외에도 대광대패, 솟대쟁이패, 걸립패 등이 있으며, 이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남사당이다.
남사당의 연원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는 매우 빈약하다. <고려사>, <해동역사>, <문헌통고> 등에 기록되기는 했으나 단편적으로 서술된 내용뿐이다. 특히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록되어 있어 남사당이 풍속을 해치는 저속한 집단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자연발생적인 민중놀이 집단으로 출발해 지배층이 주관한 놀이와는 성격이 매우 달랐다. 처음에는 사당패라고 해 여자 단원들로 구성돼 각종 행사에서 공연을 하다가 조선 후기에 남자들로만 구성된 사당패가 출현함으로써 이를 남사당이라 불렀다.

 

 

 

 

 

▲ 꾕과리를 돌리며 공연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남사당놀이,
역사적 배경이 담긴‘문화’
남사당놀이는 오랜 역사가 녹아들어 역사적 배경이 내포된 ‘문화’로서 자리 잡았고 1964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데 이어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남사당 지운하 이사장은 “남사당패의 예술정신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울분을 놀이로 승화시켰기에 풍자와 해학,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대로 놀이가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의 사조와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남사당놀이가 세계무형문화유산과 중요무형문화제에 등재되기전에는 사회적인 인식은 남사당패는 유랑예인 집단으로서 전통의 맥을 잇는 이들로 인식 될 뿐이었다.
이들은 과거 조선시대부터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계급으로 광대·장인·상인보다도 못한 집단이었지만 민중들로부터는 환영받았다.
사회에서 격리되어 자기들만의 남색사회(男色社會)를 이루고 유랑생활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절과 관련을 맺으며 집결지로 삼기도 했다. 알려진 남사당패의 은거지는 경기도 안성·진위, 경상남도 진양·남해, 전라남도 구례·강진, 황해도 은율·송화 등 이다.
지역에 따른 은거지 덕분에 각 지역에 따른 특수성을 갖고 남사당놀이판이 벌어진다. 지 이사장은 “남사당놀이는 전통 문화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발전을 거듭해 지역적 특수성을 갖추고 각 시대의 사회상과 그에 따른 풍자 등 다양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며 “이 같은 특징이 유네스코 등재에 큰 힘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사당놀이는 많은 기예능 보유자를 비롯해 전수조교, 이수자, 전수자 등 다양한 계보로 전승이 이뤄지고 있다. 이밖에도 전수자를 지망하는 많은 문하생들이 있어 그 명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재주넘기를 선보이고 있다.

‘뿌리’ 잃지 않는 ‘창작’ 이어져야

현재 남사당놀이는 젊은 층의 문하생들과 전수자들이 신세대의 개념을 도입해 전통에 창작성을 더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 페인팅으로 전통 탈을 대신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젊은 층의 색다른 아이디어와 전통 만을 고수하려는 윗세대의 의견이 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전통의 ‘뿌리’를 잃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 이사장에 따르면 남사당놀이가 모듬북으로 발전하는 시대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을 고수하려는 이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고 전통 가락에 얽매여 창작을 하려다 보니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모듬북은 사장됐지만 이후 ‘난타’로 발전해 세계화에 첫 발을 내딛었고 현재는 이마저도 시들해져 퍼포먼스로 이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지 이사장은 “남사당놀이도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며 “최근에는 다시 전통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남사당놀이의 흐름이 변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사)남사당 지운하 이사장

“전통과 현대문화 융화가 숙제”

“전국에는 남사당 이외에도 소태패 및 아극단 등 여러 사당패들이 활동해 왔습니다. 그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남사당패입니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기·예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할 수 있죠.”
지운하 이사장은 “전통의 명맥을 고수하며 현대의 문화에 맞게 창작해 변화하는 것이 남사당놀이”라며 “현재가 먼 미래에 역사가 되듯 풍물을 통해 대중들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흥분하고 환호하게 만드는 노력이 현 시대의 남사당놀이의 명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의 숙제”라고 말했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자 문화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전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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