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62세) 할머니가 사는 곳은 당진군민회관 근처 삼해회관 바로 옆집이다. 월세 10만원을 내고 허름한 두칸짜리 방에서 4년전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뜬 큰아들의 두딸과 아내가 죽은 뒤 밖으로만 도는 둘째아들의 어린 두아들을 혼자서 키우며 살고 있다.
정부에서 보태주는 월 20만원의 생계보조비가 다섯식구의 유일한 수입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살림이었는데 물난리까지 겪어 세간은 물론 남의 밭에서 따다 담아 놓았던 깻잎단지, 고추장.된장독 모두 떠내려가 벌써 일주일이 넘게 구호품으로 나온 라면으로 다섯식구가 끼니를 잇고 있다.
폭우가 쏟아진 그날 밤. 어린 손자들을 업고 안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할머니는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몸이라도 건강하면 살아볼 궁리를 하겠는데 암수술까지 받았던 몸에 당뇨까지 겹쳐 돈벌이에 나설 수도 없다. 게다가 내년에는 세들어 사는 집마저 헐려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될 형편이다. "먹고 살 희망이 없어 집이라도 내집이면 무슨 걱정이겠어"
절망적인 가슴을 쓴 담배연기로 채우며 할머니는 가난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온다는 구호품도 가난한 이들에겐 제대로 차례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남들은 장판도 새로 깔고 이불도 받고 쌀도 받았다는데 할머니는 군수실까지 쫓아가서야 라면 2상자와 단무지를 받을 수 있었다.
"지지리도 못살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난리까지 덮치는지 몰라"
당장 헤쳐나가야 할 현실이 너무 무거운 이할머니는 애꿎은 하늘을 원망해 보기도 하지만 답은 보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