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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11 16:29
  • 호수 943

[인물] 당진서 과수농사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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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면 성산1리 안골농장 인치중 씨

당진시내 한복판 ‘당진과수원’에서 고대 ‘안골농원’까지

“이상기후, 농촌 고령화, 농업 이을 젊은이없어 걱정”“경로당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옛날 추억이 생각나데요. 내 고향이 석문 통정리요. 그땐 농한기면 다들 사랑방에 모여 함께 놀았더랬지. 한켠에서는 새끼도 꼬고 짚신도 삼고 말야. 지금 경로당이 바로 그 사랑방 역할을 하는 셈이지. 경로당에 모여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땐 얼마나 재미난지 몰라. 깔깔깔 웃어가며 즐겁지.”

고대면 성산리 속사경로당에서 만난 인치중(72) 씨는 직접 지었다는 시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내려 갔다. 옛날 추억에 빗대어 요즘 경로당 풍경을 묘사한 그의 시에는 오랜 세월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늙은 농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근래 들어 마음이 적적하거나 농사일이 힘에 부칠 때 시를 짓는다고 했다.

 

과수농사 30년, 당진 토박이

인치중 씨는 당진 토박이다. 당진에서 나고 자라 석문과 고대에서 30년 넘게 과수농사를 짓고 있다. 그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사과농사 이야기로 흘렀다.

“석문중학교를 졸업하고 난 직후니 벌써 50년도 더 넘었네. 지금 당진시내 푸른병원 자리가 모두 과수원이었지. 당진정미소, 당진과수원이라고 하면 당진 토박이들은 모두 알아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꼬박 7년을 과수원에서 농사를 배웠지.”

50년 전 만해도 당진에 과수원이 많지 않았단다. 지금과 달리 동남아산, 미국산 과일들은 구경도 하기 어렵던 시절, 사과·배는 단연 서민들의 대표 과일이었다.

“그때는 자전거에 짐바구니를 달아서 직접 배달도 했지요. 수확철이면 매일 당진시내 상점마다 사과상자를 8개씩 실어다 주고 빈 상자를 12개씩 실어 올만큼 사과가 잘 팔렸어요. 과수원에 인부도 매일 30명씩 고용했을 정도였죠. 당진에 과수원이 두어군데 밖에 없었어요.”

인 씨는 세월이 흐르면서 먹을거리가 흔해 지고 수입산 과일이 들어오면서 국내 과수농가들이 점점 어려워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좀 흠집이 있어도 남는 것 없이 모두 팔렸지만, 요즘에는 사정이 달라요. 작은 흠집이라도 있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지죠. 인건비도 예전에 비해 많이 비싸고 기후도 오락가락해서 농사짓기가 쉽지 않아요.”

 

이상기후, 농사에 제일 먼저 영향

“날씨가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참 큰 문제예요. 근래 몇 년째 태풍으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과수원 치고 태풍 피해 안 본 곳이 없어요. 우리도 곤파스로 사과나무 뿌리가 끊어져서 12주나 뽑아내고 다시 심었어요.”

옛날에는 없던 일이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태풍이니 집중호우니 같은 자연재해로 농민들이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농사 절반은 하늘이 짓는 거라 여기며 자연이 주는 대로 얻어가는 농사만큼 정직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는 더 이상 우려가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 피해는 자연과 가까이 사는 농민들이 가장 먼저 겪고 있다.
“해충피해도 예전에 없던 일 중 하나예요. 무분별한 농약 살포로 천적들이 사라져 해충들이 활개를 치잖아요.”

 

“우리 세대에서 농업 끊길까 걱정”

인치중 씨는 이상기후에 따른 농사피해만큼 심각한 농촌문제로 ‘고령화’를 꼽았다. 거듭 ‘가장 큰 애로사항은 농촌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문제예요, 문제. 이러다 우리 세대에서 농업이 끊길까 걱정이에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자식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농사를 물려준다는 사람이 없어요. 나만 해도 그렇지. 수십년 넘게 지어온 농사 노하우를 전수해 줄 사람이 없어요. 앞으로 내가 몇 년 정도 더 농사를 짓고 나면 그 이후에는 끝이에요.”
인 씨는 농촌에 일할 사람이 없어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품을 팔러 다닌다고 했다.

전지부터 수확까지 직접 사람 손이 필요한 과수농가에서는 매년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난리란다.
인 씨는 “직접 자전거에 사과상자를 싣고 다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방에 앉아 인터넷으로 전국 각지에서 주문을 받아 택배로 판매하고 살기 편해졌다”며 “하지만 인건비나 농자재값은 오르고 농촌에 남아 일하려는 젊은이가 없으니 미래를 생각하면 농업, 농촌이 좋아졌다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당진과수원에서 7년간 일하다 예산농업전문대학을 졸업한 그는 송산 금암리에 자신의 첫 과수원을 꾸렸다. 첫 과수원에서는 9년 동안 사과를 수확했다. 그리고 그는 잠시 과수원을 떠나 당진시내에서 황금초원이라는 농약사를 운영하고 산림조합 기술직으로 일했다. 그러다 다시 농부로 돌아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고대 장항리에서 배농사 14년, 성산리에서 사과농사를 7년째 짓고 있다. 석문과 고대 곳곳에 취미삼아 관상수도 키우고 있다.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인치중씨의 자작시]

변해가는 시골풍경 농부가 한마디

 - 속사 경로당에 앉아

눈 감으면 떠오르는 그때 그 시절
어릴적 추억이 어렴풋 생각이 난다

동네마다 큰댁사랑방에서
탁한 공기 마셔가며
새끼꼬고 짚신삼던 옛 생각이 난다

아쉬운 세월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인생의 길에
오늘의 경로당이 옛날 사랑방이었구나

마을안길 옆에 우뚝솟은
조그마한 속사경로당
독지가가 기증한 온정의 터전에
새 건물을 지으니

뒤뜰에 낙낙장송 마을 안녕 지켜주고
앞마당 주차장 넓어지니 편리하고요

언제나 이 자리에
남녀노소 둘러앉아 정담나누니
긴긴해 하루가 짧기만 한데

담배연기 사라져가고 깔깔깔 웃으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장수마을 되었으면 정말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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