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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3.04.05 18:44
  • 호수 955

[독자칼럼] 사제간의 위계가 무너진 교육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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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범 前 교육공무원

외손녀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다. 엄마 품에서 응석부리며 지내다가 처음으로 또래끼리 집단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가끔 엄마와 같이 외갓집에 오면 어린이집 다니기 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주위산만하게 뛰어다니며 말썽부리던 애가 행동이 조심스러워졌고 거칠었던 말씨도 순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교육을 통해서 사람다운 모습으로 성장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 딸이 다녀갔다. 외손녀 표정이 어둡고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네살박이 철부지가 어린이집 다니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기에 이런 증세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선생님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로 인한 심적 어려움일까?  또래들끼리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건가? 아니면 짝꿍이 선생님 눈을 피해 괴롭히는 것인가? 기우(杞憂)이겠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초·중·고 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 봤다. 그 중에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학부모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며칠 전에 경북 경산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고교 1학년 최모 군이 투신자살 했다. 최 군은 유서에서 학교에 설치된 CCTV의 성능과 역할에 대해서 썼고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한테 물리적 폭력, 금품 갈취,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다. 가해자 이름까지 유서 내용에 쓴 것이다.

어떤 중학교 교사는 ‘최 군이 교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생각조차 안했다는 것은 비극이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당연하다’고 했다.  학교현장에서는 친구들한테 폭력을 당하는 학생들이 교사를 찾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교사들도 문제 학생을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라고 한다. 학교폭력의 주동적인 학생을 잘못 건드리면 학교에서 학생들간에 ‘병신교사’로 낙인 찍혀서 현장을 목격해도 못 본 척 넘긴다고 한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서 학생 개인상담이 효과적이지만 상담을 자주하면 동료 교사들에게 ‘유난 떨지 말라’는 힐난(詰難)을 듣는다고 한다.

교장, 교감들도 폭력사건이 있을 경우 징계위원회에 상정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이 같은 교육현장 분위기에서 학교 생활지도에 교육자의 사명감은 물론 학생들을 선도해야하는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들은 생활지도에 손을 떼고 방관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지금의 교육현장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지난 해 8월 말 40여년의 교직을 마감하고 정년퇴직 하였다. 교직에 있으면서 학교장을 역임할 때에는 매주 월요일에 있는 학생 조회를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학교장 재임기간 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다. 학생 조회 시간에 학교장 훈화를 준비하기 위해서 며칠전부터 고심하곤 했었다. 생활지도 영역에서 학교폭력과 관련된 인성문제, 교우관계 등은 물론 학교 교육과정 운영과 연관된 시사적인 것들을 고려해서 훈화를 준비하곤 했다.

학교장의 훈화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선생님들이 학습지도, 생활지도를 철저히 하라는 속내를 비치기도 하였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했던 훈화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성과를 거두었는지 언급하지는 않겠다.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필자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제 문제는 학생 교육활동을 주도하는 교원들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학생의 가정적인 환경이나 개인 인성문제로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가정에서의 문제가 있을 때 학부모가 책임지듯 학교에서의 문제는 선생님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아무리 교육현장에서 사제간의 위계가 무너졌다 해도 문제학생 지도를 포기하고 방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생님들은 암울한 교육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문란해진 교육현장을 바로 세워야 할 책임이 선생님들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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