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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 입력 2013.06.10 14:12
  • 수정 2015.06.12 22:12
  • 호수 963

[우리 지역 문화재 를 찾아서]
신암사 금동여래좌상 '장대한 형태와 온화한 미소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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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극락왕생과 자손번창 기리며
14세기 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

 

▲ 신암사 금동여래좌상 (보물 제987호)

 송악읍 신암사(주지 석일훈)에는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보물 제987호 금동불좌상이 있다.

신암사는 고려 충숙왕 때 능성 구씨의 4대손인 구예가 가교리에 터를 잡으면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신암사에 자리잡고 있는 금동불좌상은 전체적인 불상의 모습이 청양의 장곡사 불상의 모습과도 가깝지만 좀 더 당당하고 볼륨이 있는 형태다.

특히 얼굴은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상체는 장대하며 느슨하게 표현된 가슴근육은 장곡사 불상과 같은 양식이다. 하체는 넓고 당당한 모습이며 특히 무릎의 근육 묘사는 상체의 표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반면 간략한 선모양과 일정한 두께의 옷은 앞의 불상과 비슷하나 왼쪽 팔소매에서 옷자락이 무릎으로 내려온 것이 다르다.

또한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오른쪽 어깨의 반달같은 큰 옷자락, 왼쪽 어깨의 초생달 모양과 옷깃 표현, 두 팔에서 휘어져 내려온 옷자락 등이 장곡사 불상과 비슷한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금동불좌상은 14세기 전반에 같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장곡사나 문수사의 불상과 같은 유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신암사 석일훈 주지스님은 “능성 구 씨가 집성촌을 이루기 시작하고 4대 손인 구예의 부인 신 씨가 남편의 극락왕생과 자손번창을 위해 부처님을 모시기 시작한 것이 신암사”라며 “신암사는 본래 구룡사라 불렸으며 700여년 전 신암사가 창건하며 금동여래좌상도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암사는 구예의 부인 신씨의 이름을 따 신암사로 불리고 있다.

■연락처 : 355-6196
■주   소 : 송악읍 가교길 144-9

[편집자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문화유적 그리고 후손에 전해주어야 할 가치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문화유산들은 단순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장되거나 잊혀지며 훼손되고 있다. 본지는 지역의 숨어있는 명물과 문화유산을 발굴해 보도해 넓게는 당진의 관광산업 발전을,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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