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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8]대호지면 송전리
젊은이들 생기 넘치는 ‘고지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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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성기 제2의 새마을운동 시작”
선조시대 영의정 이양원 선생 고향

 

▲ 1. 송전리 마을 전경

 당진에서 농촌 고령화가 가장 심각하다는 지역이 대호지면이다. 청년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초고령 지역이지만 송전리는 다른 마을과 사뭇 다르다. 당진 그 어떤 마을보다 청년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언제나 생동감이 넘치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몇 해 전 만해도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한 주민의 표현에 의하면 마을회관 주변에는 젊은이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단다. 그러다가 외지에서 온 사람이 크게 돈사를 짓는다고 하면서 주민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축사 신축을 반대하며 주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축사 주인이 두 손을 들었다. 주민들은 ‘뭉치면 되는 구나’ 라는 걸 배웠다.

 

▲ 2. 매일밤 탁구모임을 하는 마을 주민들

어려움 겪으며 마을주민 단합

이장과 지도자, 부녀회장 등 마을의 리더들이 젊은이들로 재편되고 주민들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마을사업을 진행해 나가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우리마을 사랑운동’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순위권에 들어 협동상(3위)을 차지했다. 또한 농촌 활력화 마을로 선정돼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3년 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죠. 젊은이들은 마을 일에 무관심했어요. 마을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제2의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정재일 지도자)
주민들은 마을회관 옆에 공간을 만들어 매일 밤 탁구를 치면서 건강과 주민 간 우애를 다져나간다. 이 시간에 서로에 대한 애정을 쌓고,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물론 대화의 시간도 갖게 됐다. 탁구 모임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마을주민들의 교류의 장이다.

 

▲ 3. 마을을 지켜준다는 느티나무

장어 많이 잡히던 풍천지역

송전리는 젊은이들이 중심이 된 활기찬 마을이지만 사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서산시에 속했다가 지난 1957년 당진군으로 편입된 송전리는 대호방조제를 막기 전 마을 안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풍천’ 지역이어서 장어가 많이 잡히곤 했다. 뿐만 아니라 숭어와 망둥이, 농어 등 어장이 풍요로운 동네였다.

지금은 마중천이라고 이름 붙은 개울은 마을사람들은 ‘고지내’라고 불렀다. 시냇물이 곧게 뻗어 ‘곧은 내’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아직도 주민들은 송전리 일부 지역을 고지내라고 부른다.

 

▲ 4. 이양원 선생의 신위를 모신 사당

마을 지켜주는 오래된 느티나무

송전리에는 마을을 지켜준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 모습이 장대하고 수려해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바닷가였던 송전리에는 모래가 많아 모래굴이라 불리던 지역이 있었으며, 절이 있었던 절골, 물레방아가 있었던 방아골, 찬샘이 나던 지역이라는 뜻에서 불리던 참새골(찬샘골에서 변해 참새골이 됐다고 전해짐) 등이 있다.

특히 참새골에는 현재 마을의 상수도 관정이 있는 곳으로, 이곳의 물은 사시사철 13~14℃를 유지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다고 한다. 마을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던 빨래터였다고. 마을회관에서 느티나무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다 보면 문헌공 이양원 선생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 나온다. 이양원 선생은 선조시대에 영의정을 지낸 분으로 현재 도로명 새주소 ‘문헌로’라고 이름 붙은 것도 이 같은 역사에서 유래됐다.

그 아래에는 이양원 선생의 셋째 아들인 이시경 선생의 정려(세마별묘)가 있다. 향토유적 4호로 지정된 이곳에서 매년 한식 때마다 마을의 전주 이씨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우리마을 주민대표

“젊은이들 함께하며 마을에 활력 생겨”

“마을 청년들이 똘똘 뭉쳐 협동이 잘 되는 동네여. 이들이 잘 따라주니 마을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송전리 이응노 이장은 침체된 분위기였던 마을이 3년 전부터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 건 청년들의 단합된 힘 때문이었다고 꼽았다. 이 이장은 “젊은이들이 함께하면서 마을이 활기를 되찾았다”며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데 마을 어른들이 앞으로도 더욱 지원하고 힘을 북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재일 지도자는 “어르신들이 든든히 지켜주고, 젊은이들이 마을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열심히 활동하기 때문에 행복한 마을로 거듭날 수 있었다”면서 “마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젊은이들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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