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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대상 수상한 기지시줄다리기 인간문화재 장기천 옹
전통 이으려 ‘줄’에 바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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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
“북한과 하나 돼 줄다리길 소망”

 

투박한 손이다. 15살 소년의 고왔던 손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주름지고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이 됐다. 어깨너머로 배운 줄 제작을 한평생 업으로 삼을 줄 차마 몰랐다. ‘누군가 이어받지 않으면 사라질 텐데’하는 스쳐지나간 생각이 한 사람의 인생을 장인의 길로 이끌었다.

시민의 날을 맞아 ‘제2회 당진시 시민대상’을 수상한 인간문화재 장기천 옹은 기지시줄다리기 줄 제작을 65년이나 이어왔다. 기지시줄다리기를 하는 ‘난장’이 펼쳐질 때면 어른들의 심부름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줄 제작을 배웠다. 당시 에는 줄 제작에 대해 체계적으로 전승하거나 기록으로 남겨 두지 않았다. 3년 마다 한 번씩 판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줄을 만드는 방법을 잊곤 했다.

기지시리 주민들이 하던 줄다리기를 위해 안섬포구 뱃사람이었던 이득천 옹을 모셔다가 줄을 제작했다. 당시 15살 소년이었던 장기천 옹은 ‘이 분이 돌아가시면 누가 줄을 만드나. 기지시 난장도 끝나겠구나’하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줄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전수생의 개념조차 없었으니 누구도 줄 제작 기술을 제대로 익히는 사람이 없었지.”
쉽지 않은 길이었다. 지원되는 예산과 인력이 없어 줄 제작도 주민들이 푼돈을 모아 해야 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일을 오로지 ‘전통을 이어야 겠다’는 생각에 묵묵히 평생을 바쳤다.

 

장기천 옹은 “줄 제작하며 밥 한 끼 먹기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며 “옛날에 비해 기지시줄다리기에 대한 가치가 조명되면서 지금은 말할 수 없이 좋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길이 200m, 무게 40t의 줄을 만드는데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자식 같이 여기며 정성을 담아 만든 줄을 수천 명의 사람이 ‘의여차’하고 다릴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지난 기지시줄다리기 축제 당시 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하아…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해. 맥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정도였으니까….”
그는 추수가 끝날 무렵 볏짚을 사들이는 것부터 축제가 끝날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여름 내 장마가 길어지진 않는지, 좋은 볏짚을 확보할 수 있을지 온통 ‘줄’ 생각뿐이다.
기지시줄다리기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고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장기천 옹의 공이 컸다. 앞으로 유네스코 공동 등재와 기지시줄다리기 지원조례 제정 등 위상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추진 중이기도 하다.

한편 여든의 노인에게 꼭 이루고픈 꿈이 있다.
“개성이든 평양이든 어디라도 좋아. 북한주민들과 함께 꼭 줄을 다리고 싶어. 줄다리기의 의미가 ‘하나됨’ 아니겄어? 그리고 또 하나는 줄 제작 전수생과 이수자들의 처우가 좋아지는 모습을 생전에 보고 싶네. 지원 한 푼 되지 않는 지금, 사명감 하나로 어려운 길을 걷는 이들의 삶을 국가가 보호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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