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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12]
당진정보고등학교 총동문회 손진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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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최선을 향해 달린다”
성우에서 영업·관리직까지
목표의식과 성취 위한 노력

▲ >> 약력- 행정동 출생- 당진초등학교 47회 졸업- 당진중학교 16회 졸업- 당진정보고등학교 18회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아시아 및 한국 MNA투자협회 상임고문- 당진정보고등학교 총동문회 회장

출향인들에게 고향 당진은 자랑스러움이자 어린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비록 몸은 고향과 떨어져 살고 있지만 당진에 관련된 다양한 소식을 접할 때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당진정보고등학교 총동문회 손진원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고향 당진의 발전 소식은 큰 기쁨이자 자랑이다. 출향인 간 다양한 모임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전하기도 한다.

“‘격세지감’(隔世之感 :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당진의 발전은 지역민을 비롯해 출향인들에게 큰 기쁨이고 자랑입니다.”
행정동(당시 당진읍 행정리)에서 출생한 손 회장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회장을 지내며 폭 넓은 교우관계를 유지해 왔다. 손 회장의 말에 따르면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고 오랜기간 학생대표로 활동해 많은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손 회장은 자신의 많은 인맥들과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바로잡아가는 기회로 삼았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성장해서 어느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될지 정확하게 목표를 갖고 생활했으니까요. 당시 웅변대회 입상은 내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됐죠.”

방송·언론계에 종사하겠다는 꿈을 가진 그는 꾸준하게 웅변을 연습해 충남도 웅변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진정보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성우 활동을 시작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목소리가 타고난 재능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부터 다져온 웅변실력이 큰 도움이 됐다. 희소성과 매력을 갖춘 직업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상황이 열악했던 시대였던 만큼 성우에 대한 경쟁도 치열했다. 흔히 이야기하는 ‘돈 없고 백 없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딱 맞았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많은 장애요소들이 손 회장이 성장하는데 장애물이 되었고 성우라는 직업에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일단 사표를 던지고 일반 회사에 입사해 영업·관리를 담당하는 멀티플레이어로 자리를 잡았죠. 입담도 좋았고 목소리도 좋아 직장 내에서나 거래처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좋은 장점이 됐습니다. 연차가 거듭되면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대기업과 거래를 담당하는 위치에 서게 됐죠.”

하지만 대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는 것을 중·소기업들과 달리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대기업과 자신의 위치는 항상 후자 쪽이었다. 영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다른 기업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다.
손 회장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입장이 되고 싶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회사의 제품과 능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래처인 대기업 담당과장들을 상대로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독특하고 당당한 손 회장에게 담당자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제품에 대한 특별한 검토도 이뤄지지 않은 채 거래는 항상 이뤄지지 않았다. 손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절박했다고 표현한다. 회사 관리도 겸하고 있어 자신이 맡은 업무에 회사의 생사가 걸려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질릴 정도의 끈질긴 구애 끝에 제품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고 손 회장은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젊은 시절의 나는 절박함을 원동력으로 항상 한계와 싸우며 살아왔어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이를 이뤄내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이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고요.”
그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고 전국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경영과 관리·영업 등을 전문으로 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아시아 및 한국 MNA투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편집자주>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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