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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사진] “시인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한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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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 황영애 사무국장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1학년 학예 발표회 시간에 찍은 사진이다. 내 예술적인 재능을 알아본 영어 선생님이 무용과 시화전 참가를 권유해 고전무용을 했던 기억이다. 선배들 틈에서 시화전을 준비하며 시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발표회를 마치고 교내 연못에서 명상에 잠기며 시심을 키웠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두 번째 사진은 대학생 시절, 100세의 연세에 고인이 되신 외할머니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외할머니는 딸 일곱을 내리 낳고 아들 셋을 마지막으로 낳으셨다. 유교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안동에서 살면서 가슴앓이를 많이 하셨다. 외할머니는 이 한을 노래로 직접 지어 부르셨는데 그 노래가 고루 퍼져 안동 내방가사(조선 시대에 주로 양반가의 부녀자들이 지은 문학의 한 형태로 규방가사, 규중가도로도 불림) 보급의 일인자가 되셨다.
사진에서는 셋째 이모 넷째 이모,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늘 글을 잘 쓰는 나를 칭찬해 줬던 기억이 벌써 25년 전 일이 됐다.
학자셨던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 선생의 한시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안동소주에 얼큰하게 취하신 날이면 시조를 읊어 주셨는데 안타깝게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 어려서부터 내가 글을 쓰면 일기장과 작은 편지까지 모아 두셨던 어머니의 정성과, 내가 쓴 시를 낭송하게 하셨던 아버지의 사랑, 친가·외가의 환경이 오늘날까지 글을 쓰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다.

 

세 번째 사진은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부문 신인상 수상 당시의 모습이다. 등단 작가와 수필가 도창회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신인상 등단을 통해서 막무가내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진, 조금 더 성숙한 시인으로 성장케 됐다.

 

네 번째 사진은 2001년 농암 이현보 선생 시비 건립행사장에서 시낭송을 하던 모습이다. 이날 시낭송을 계기로 라디오 방송국 김시묘 PD로부터 ‘농암 이현보 문화인물 다큐멘터리’에 시낭송 제의를 받았다. 덕분에 전국 라디오 방송을 탔던 짜릿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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