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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 입력 2013.10.18 22:14
  • 호수 981

김인섭 전 면천면장이 추천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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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으로 가문의 몰락과 어려움 속에서도 스칼렛은 가녀린 여인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일어서며 고난을 이겨낸다. 다시 찾아온 시련에도 바람부는 언덕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장면이 김인섭 씨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장면이다.

“그 끝만 기억나요. 너무 아름다웠죠. 50년이 지났는데도 그 장면이 잊혀지질 않네요. 마지막에 나온 주제곡은 아직도 부르곤 해요.”
김인섭 씨는 서울로 대학을 다닐 당시 한국 최초의 1급 상설 영화관인 단성사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본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에는 영화를 관람할 때 착용하는 안경이 있어야만 넓은 스크린이 보였죠. 그 때 당시 1급 영화관 영화비가 2000원으로 기억해요. 지금 돈으로 2만 원이 넘는 가격이죠. 당시 돈 있던 멋쟁이들이 영화를 많이 봤었어요.”

지금처럼 그 당시 영화관도 데이트 장소 중 하나였다고 한다. 머리를 곱게 빗고 단정한 옷을 입은 여자들과 잘 차려입은 남자들은 서로 손도 못 잡고 영화관을 찾았다. 또한 영화관에서 간혹 짓궂은 남자들은 관람석에 껌을 붙이기도 하고 여자들의 하얀 블라우스에 오렌지 음료를 물총처럼 쏘기도 했다고. 송산면 금암리가 고향인 그는 옛 당진의 영화관 풍경을 떠올렸다.

그가 초등학생이었을 당시 접한 첫 영화는 ‘유관순’ 이었다. 무성영화가 상영되던 당시에는 옛 당진군청 창고 자리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주민들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던 때였다. 오디오 장치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스크린에 상영되는 배우들의 입모양에 맞춰 변사들이 육성으로 대사를 읊었다.
그 후 50년대 후반 현재 송산의료기 옆에 극장이 세워졌고 이후 두번째 극장이 생겼다. 그게 바로 지금의 당진 시네마다.

“당시 교육청 문화계원들이 영화를 미리 보고 포옹이나 키스 장면이 있으면 필름을 자르기도 했어요. 당진극장에서는 영화 말고도 희극도 많이 했죠. 그럴 때면 저녁 을 일찍 먹고 영화관으로 모였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가 마지막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 장면이 50여 년 동안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 명작으로 기억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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