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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3.21 21:30
  • 호수 1002

세상사는 이야기 7 우강치안센터장 강준구 경위
“소도둑놈 같다고? 마음은 비단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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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간 노인·장애인 찾아다니며 봉사
퇴직 앞두고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퇴임을 앞두니까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 혹시 지나친 열정 때문에 (작은 죄를 지은 사람까지도) 무리하게 잡아들이진 않았을까…. 혹은 무고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준적은 없을까…. 그래서 행여 그들의 앞길을 막아버린 건 아닐까…. 특히 젊은 친구들에겐 더 그렇지.”
범죄라곤 있을 것 같지 않은 한적한 시골동네 어귀에 ‘우강치안센터’가 보였다. 책상 두어 개와 의자 몇 개,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사탕바구니. 많지 않은 집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혼자 쓰는 공간 치고는 꽤 넓어서인지 문득 쓸쓸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구 경위는 오는 6월이면 34년간 매일같이 입어온 경찰복을 벗어야 한다. 정년퇴직을 3개월 앞둔 그는 요즘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 보였다. 군대를 다녀온 뒤 서른 살에 시작한 경찰 생활을 갈무리하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에 대해 차근차근 계획하고 있었다. 

“막걸리 한 병, 고등어 한 손”

우락부락한(?) 인상 탓에 그가 “퇴직 후 요양보호사를 해볼 참으로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르신들이 무서워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몇 번을 마주치고, 한참을 얘기하면서 인상과는 사뭇 다른 그의 마음 씀씀이에서 진하게 밀려오는 따뜻함을 느꼈다. 영락없이 정 많은 시골 아저씨다.
“생긴 건 소도둑놈 같지 뭐. 근데 들어는 봤나 모르겠네. ‘강 비단’이라고…. 하하하~”
마음결이 비단결같은 강준구 경위는 오래전부터 지역의 어르신들을 찾아뵙는 일을 해왔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말벗이 되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에겐 발이 돼줬다. 그는 한사코 봉사활동을 한 게 아니라며 한 번도 봉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겐 일상적인 일이었다.
사탕 한 봉지, 고등어 한 손, 때로는 막걸리 한 병 사 들고 찾아가 두런두런 말벗이 돼주는 게 어르신들에겐 가장 큰 기쁨이자 위로가 된다.
강 경위는 “경찰관 생활을 오래 하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게 된다”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경찰들도 다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살인사건부터 교통사고·화재사고·익사 등 수많은 현장에서 처참한 광경을 숱하게 목격해 오면서 험한 일이란 일은 다 겪다 보니, 깨끗이 마음을 씻는 일이 그에게 필요했던 건 아닐까.
지난 34년 간 경찰생활을 돌이켜 보면 그동안 별의 별 일이 다 있었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는 신평면에서 있었던 살인·암매장 사건이다.
“1998년 쯤일거여. 선후배들이 함께 술을 먹다 평소에 괴롭힘을 당하던 후배 5명이 선배를 죽여 인근 산에 암매장한 일이 있었지. 아무도 모르게 묻혀버린 그 일에 대해 7~8년 만에 범인 중 한 명이 자수를 했어. 알고 봤더니 그동안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면서 살았다더군. 범행에 가담한 다른 사람들도 그랬데. 그래서 가끔씩 그 자리에 몰래 찾아가 제사지내 듯 술을 붓고 갈 정도로 마음에 짐이 컸던 모양이야. 사람들은 죄 짓곤 못 사는 것 같아.”
“경찰은 내 운명”

오랫동안 형사생활을 하면서 밤낮 없이 험한 일들을 하느라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도 적었다. 가족들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닮아갔다. 큰아들은 육군대위로,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이 됐다. 경찰이 어떤 직업보다 고되다는 걸 알지만 아들이 경찰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 고마움과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렇게 아버지의 퇴임을 앞두고 아들은 경찰관이 됐다.
강 경위는 “경찰인 아버지를 두 아들이 존경했던 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은연 중에 동경해 왔었나 보다”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아들을 통해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는지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힘든 업무와 열악한 복지·환경, 더불어 경찰에 대한 오해와 불신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그는 다시 서른 살로 돌아간다 해도 경찰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관은 팔자(운명) 같단다.
“경찰복을 입고 반평생을 살았네. 일을 하면 할수록 사명감이 커졌어. 그게 아니면 누가 이 험한 일을 할 수 있겠어. 경찰이 아니면 못해. (아들과 후배 경찰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네.”

 

>>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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