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 책소개
  • 입력 2000.10.30 00:00
  • 수정 2017.08.10 16:43
  • 호수 344

호서고 정봉식 교사가 추천하는<낙타는 십리밖물냄새를 맡는다>
이처럼 헌신적이고 총명한 산문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작을 보면 행복해진다

정봉식 / 호서고 교사, 본지 편집위원장

의과대학 교수로 정년퇴임한 칠순 앞둔 노 시인의 정련된 글
이처럼 예술적으로 헌신적이고 총명한 산문이 오늘 한국어로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신기한 일이다.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허만하 산문집 / 솔출판사 펴냄 / 8,500원

“바람은 미래쪽에서 불어온다
낙타는 십리밖에서도
물냄새를 맡는다
맑은 영혼은 기어서라도 길 끝에 이르고
그 길 끝에서
다시 스스로의 길을 만든다
지도의 한 부분으로 사라진다”

“아름답다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
시에서 언어가 떠난 뒤의 빈 숲은
아름답다”

지난해 가을 두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designtimesp=11035>로 중앙문단에, 아니 전국의 독자들 앞에 나타난 허만하 시인은 비상한 관심과 적지않은 경이를 불러 일으켰다.
문학평론가 김우창 교수의 지적대로 ‘어설픈 사고와 감상과 대중적 푸닥거리와 쉬운 위안이 유행하는 시대에 드물게 보는 끈질김과 일관성을 가지고 생각하는’ 허 시인의 등장은 가을빛 잠긴 맑은 호수에 이는 기분좋은 파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두번째라는 말에서 암시되듯 그는 이미 60년대에 등단해 활동하던 시인이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거리와 그 편린들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더라도, 실존적 성찰, 근원으로의 회귀, 그리고 순수의지와 정열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시적탐구의 일관성과 철저성은 독자들의 주목에 값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우리 독자들에게 맑은 여운으로 남아있는 허 시인이 이번에는 산문집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designtimesp=11039>를 가슴에 안고 우리곁에 왔다.
자질구레한 신변잡기가 통속적인 관념들로 분칠된 산문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허 시인의 이번 산문집은 그의 두번째 시집처럼 우리에게 소중하게 다가온다.
책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삼가기로 하고 대신 문학평론가 김사인 교수의 문장을 읽어보자.
“대상의 심오에서 노니는 허만하 선생의 미적통찰은 가히 사람을 황홀하게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정신의 몸을 이루는 그의 문장인데 그것은 기이함을 취하여 편벽에 이르거나 교묘함을 애써 구하여 괴팍해지는 법이 없다. 다만 고르게 호흡을 안배하여 두텁고 따스하며 수월한 가운데 저 깊고 멂과 일말의 비장을 그윽히 아우를 뿐인 것이다. 이 문무겸전의 내공과 고르고 긴 호흡과 향기 앞에서 어찌 옷매무새를 고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처럼 순정한 예술적 헌신과 총명의 산문이 오늘 한국어로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이번엔 허 시인의 얘기를 들어 보자.
“시가 전달하는 것은 벙어리 소녀의 눈빛과 같은 침묵이다. 우리 논리의 손가락 사이를 새나가는 모래이며, 무력한 언어가 잉태하는 안타까움이다. 참된 예술작품은 말하지 않는다. 시는 시만으로 직립 해야 한다.”
그의 산문도 역시 시다. 더이상의 미주알 고주알은 헛 것이다. 허만하 시인이 펼쳐놓은 풍경을 감상하며 이 가을을 견뎌보자.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