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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4.05.03 15:38
  • 호수 1008

삼종소리가 울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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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합덕성당 전담신부

긴한 일로 바쁘게 찾아간 명동성당에 종이 울린다. 분주하던 일상이 중단되었다. 하던 말을 삼키고, 가던 길도 멈추어 섰다. 삼삼오오 혹은 혼자서 조용히 손을 모은다. 울고 있는 종소리 말고는 온통 정지되어 버린 세상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예전, 성당의 종소리가 아직도 남아있던 그 시절에는 너무나 평범했던 일상이었는데도 말이다. 종소리조차 소음으로 간주되는 이 시대가 가슴이 시리도록 귀하고 아름다운 전통을 잊게 만들고 있었던 게다.
밀레(Millet, Jean-Francois 1814~1875), 그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신자였나 보다. “삼종이 울리면 할머니는 언제나 일손을 멈추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화가 밀레는 할머니를 기억하며 그리고 자신이 늘상 보아온 일상을 화폭에 담기를 좋아했단다. ‘만종(晩鐘)’, 본래의 제목인 ‘안젤루스’가 말하듯 그림의 소재는 ‘삼종기도’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로 시작하는 삼종기도는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고백하는 기도다. 세상의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많이 드리는, 그래서 가장 사랑받는 기도 가운데 하나다. 온 종일 고된 일로 땀에 젖고 피로에 지친 저녁 어스름, 멀리 성당에서 저녁 삼종 소리가 들려온다.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손을 모은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언젠가 파리의 한 미술관에 들러 한참을 바라보던 그림에서는 거짓말처럼 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때, 그 끝없는 들판에 울리던 합덕성당의 종소리도 그랬단다. 성당에서 기인한 종소리에 기대어 일도, 기도도, 휴식도 이뤄졌다. 거칠게 갈라진 손을 모으노라면 영육의 고단함이란 삼종소리와 함께 안식에 들기마련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대지를 감싸고 하늘을 매우던 삼종소리는 속된 세상을 그렇게 시간 속의 ‘지성소(至聖所)’로 만들었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아, 그러고 보니 밀레의 그림 속 풍경은 바로 이 들판의 이야기였다.
삼종소리를 잃은 것은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영혼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소리와 그 안에 깃든 신앙의 유산들과 영원한 가치에 머물렀던 선조들의 시선 말이다. 다시 삼종을 울리면 어떨까. 순교의 정열로 가득한 합덕의 들녘으로부터 땅과 하늘을 퍼져간 삼종소리가 신앙의 터 내포를 시간 속의 지성소로 만들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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