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 칼럼
  • 입력 2014.05.16 21:44
  • 호수 1010

2014년 그 잔인한 4월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은열합덕감리교회 담임목사

미국 태생의 영국인 시인 T.S. 엘리엇 (1888~1965)은 1922년에 장문의 연작시 ‘황무지’를 발표하였는데 1연의 ‘주검의 매장 (The Burial Of The Dead)'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Cruellest) 달”이라고 읊었다.
90여 년이 지난 2014년,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 ‘끔찍한, 몸서리쳐지는 (Extremely Horrible)’ 초유의 참사가 벌어졌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불리는 그 재앙이 있기 전까지 올 봄은 여느 해 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창시절 누구나 가슴 설레며 다녀왔던 수학여행. 그것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첫 손가락에 꼽는 제주도 소풍 길에 나섰던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의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은, 2014년 4월 15일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과 기쁨을 가득 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여객선 ‘세월호’에 승무원 포함 137명의 다른 승객들과 승선했지만 목적지 제주도에 ‘함께 다녀오지’ 못했다.
아, 분하다. 억울하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슬프다. 그리고 가슴 저 밑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얼굴을 들 수 없는 자괴감과 한탄은 또 어쩌란 말인가.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제 가슴을 두드리며 외친다. “제 목숨이 소중하면 남의 목숨도 소중한 법, 어찌 저만 살자고 그렇게들 할 수가 있다는 말 입니까? 선박 승무원 중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 딸, 동생, 조카 같은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구해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외친 이가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억울하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아직도 냉기가 싸늘한 바닷물에 빠져 죽어가야 했단 말인가?
억울하다. 이 땅의 그늘진 곳에서 열악한 처우와 박봉에도 감사하며 조국과 국민을 위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묵묵히 일해 온 공무원들은 사고라기보다는 재앙에 가까운 참사에 용기를 잃고 허둥대며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동료들을 보며 가슴을 친다.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조상님들은 우리에게 문제해결의 도우미들이셨고 우리 삶의 위대한 카운슬러셨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희들에게 할 말이 없구나. 사람의 목숨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안전이란 단어는 일찌감치 팽개친 이단의 교주가 떵떵거리며 죽음의 유령선을 운항하도록 방치한 총체적이고 집단적인 어른들의 부패가 너희들을 차가운 바닷물에 밀어 넣었구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침착하게 동요 없이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른 너희들을 우리 어른들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으니 우리는 이제 너희들에게 무슨 말로 가르치며 무슨 낯으로 꾸짖을 수 있을까. 법이 있었지만, 제도가 그럴듯해 보였지만, 시스템을 갖췄고, 유능한 인력을 투입하고, 완벽한 장비를 운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사고를 방지할 수도 있었던 단계마다 어느 한 군데에서도 사고를 방지하거나 늦추거나 피해의 정도를 줄이지 못한 채 최악의 재앙을 너희들에게 덮어 씌웠구나.
세상에 이렇게 더럽고 우울한 확률이 또 있을까.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