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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는 소리 마, 할머니 없으면 난 어떡해”
사랑을 나눠주세요 38 반촌리 은미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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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할아버지·거동 불편한 할머니
월 20만 원 위해 쓰레기 주워 생활

 

새벽녘, 퉁퉁 부은 다리에 통증이 찾아올 때면 고통에 못 이겨 은미 할머니는 눈물을 쏟아 낸다. 이럴 때면 먼저 세상을 떠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맏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들아, 왜 어미를 안 데리고 가니. 제발 좀 데려가라.”
그는 빌고 또 빈다. 하지만 떠날 수 없다. 핏덩이 때부터 할머니를 엄마처럼 여기며 살아온 은미(가명·14)가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또 우네, 또 울어. 할머니 죽으면 난 어떻게 살아. 제발 죽는다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렇게 할머니와 은미는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은미네 가족 이야기

은미네 할아버지는 녹내장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 지난 2009년,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다. 할머니는 허리디스크로 두 번의 수술을 거쳤으며 현재 갈비뼈에도 이상이 있는 상태다. 더구나 맏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수술한 두 무릎은 나아질 기미 없이 퉁퉁 부어만 간다. 여기에 하지정맥류까지 겹쳐 혈관이 튀어 나와 있다.
할머니의 맏아들이자 은미의 큰아빠는 40세의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고작 노란 모자와 사진 한 장이다. 은미네 아빠는 10년 째 연락이 두절된 상태며 두 고모는 부모를 모시기엔 어려운 형편이다.

아픈 다리 끌고 쓰레기 주워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 중학생 은미를 제외하면 생계를 유지할 사람은 할머니 뿐이다. 하지만 온전치 않은 다리로 거동조차 힘들다. 그럼에도 한 달에 20만 원을 벌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쓰레기를 주우러 나간다. 
그런 할머니 모습을 보고 자란 은미는 십 원 하나 쉽게 쓰지 못한다. 한 번은 “할머니 배고프다”며 “뭐 사먹을까”라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은미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할머니가 이유를 묻자 은미는 “할머니가 절뚝거리며 쓰레기 줍는 것을 생각하니 못 사먹겠다”라고 말했단다. 그런 은미를 볼 때면 속이 타들어가는 할머니다.

스마트폰 가지고 싶을 나이

주변에서는 은미의 휴대전화를 보고 ‘아무도 안 가져 갈 핸드폰’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여기저기 깨진 2G 핸드폰이기 때문이다. 친구들 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가지고 싶을 텐데, 할머니는 사줄 수 없는 형편에 미안하기만 하다.
은미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못해 팔뚝만한 작은 아기였을 때 큰 수술을 했다. 지금도 은미는 큰 상처를 가슴팍에 지니고 산다. 그 뿐만 아니라 격한 활동이나 뜀박질을 할 때면 심장이 아프다. 몇 차례 쓰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는 참 착하게 자랐다. 몸 불편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잘 하는 모습에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용돈을 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100원이고 500원이고 꼭 모아 놓는 은미다.

기초생활수급도 못 받아

시각장애인 할아버지, 거동이 힘든 할머니는 근로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중학교 1학년 은미가 돈을 벌 수도 없다. 이렇게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은미네 집이 할아버지 소유로 돼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 했다.
주변 이웃들은 은미네 형편을 알고 조금씩 도움을 주고 있다. 생일상 차려주는 이웃, 은미 소풍 때 용돈 주는 이웃, 추울까봐 이불을 전하는 이웃 등 할머니는 도움을 준 사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명절과 생일이 돌아올 때면 삶이 야속하기만 하다.
은미 할머니는 “명절이나 생일 때는 떠난 아들과 멀리 사는 딸들이 더 보고 싶어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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