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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5.01.16 20:44
  • 호수 1043

[복지칼럼] 갑(甲)과 을(乙)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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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철 송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다사다난했던 2014년 갑오년이 역사의 한 장으로 넘어가고 2015년 을미년 새해의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민족은 항상 좋은 덕담으로 한 해의 소원성취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타인의 만사형통을 위한 진심어린 덕담으로 복을 빌어 주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미덕과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 갈등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떠오른 ‘갑질’이다.

갑(甲)과 을(乙)의 관계는 조선시대 관존민비(官尊民卑)사상이 짙게 남아있는 역사적 산물로 외국에는 없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법률용어다. 본래 갑과 을은 천간(天干)의 甲(갑), 乙(을), 丙(병), 丁(정), 戊(무), 己(기), 庚(경), 辛(신), 壬(임), 癸(계) 십간 중에서 첫 번째인 갑(甲)과 두 번째인 을(乙)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갑과 을은 ‘권력에 의한 상하관계’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이런 의미로 쓰일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갑,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자를 을이라 한다.

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나 쓰던 갑과 을은 그동안 계약서에서나 보던 용어였지만, 이제 우리 사회 내 강자가 지위를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행위를 요구하는 대표적 명사가 되면서 갑의 횡포를 ‘갑질’이라고 한다. 이는 갑의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를 붙여 만든 신조어로 무한권력을 꼬집는 ‘수퍼 갑’, ‘울트라 갑’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또한 갑처럼 군림하는 사람을 일컬어 ‘갑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이슈는 포스코 임원의 기내 폭행사건(일명 ‘라면 상무 사건’), 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CU 가맹점주 자살 및 사망진단서 조작 사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 경기도 부천의 한 백화점에서 주차요원에게 무릎 꿇게 하는 ‘백화점 모녀 사건’, ‘대전백화점 고객 난동 사건’, ‘위메프 해고 사건’ 등으로 이어져 왔다. 이는 우리 사회의 배려와 공감의 부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실감나게 하는 사건들이다.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이들 갑들의 변명은 하나같이 유사하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 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내세워 상대방을 복종시키려 하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며 자신의 언행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한편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나도 피해자야”라는 볼멘소리를 하면서 자신이 지닌 권력과 부를 가지고 “내가 내 돈 내고 그에 합당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라고 항변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렇듯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열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보다 약해 보이면 상대방은 을이 되고, 자신은 갑이 되어서 갑질이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결국 너와 나는 다르고,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구분하고 판단하는 사회 인식과 구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갑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갑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들을 쉽게 잊고 살아가고 있다. 필자 역시 어느 순간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으로 둔갑하여 갑질을 하는 성숙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어떤 자리에서는 을이 되는 위치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한 숨을 쉬기도 했다.
갑과 을로 나타나는 문제들은 우리나라가 시급하게 치유해야 할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새해에는 수직적 상하관계를 벗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확산되길 소망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갑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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