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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13 22:23
  • 호수 1050

“도시보다 소 키우는게 좋아요”
23살 젊은 축산인 김동영 씨(신평면 상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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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청년, 시골청년이 되다
“축산업 발전에 밑거름 되고파”

농촌에서 젊은이를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됐다. 농촌에서 자란 젊은이들마저 다들 농업보다는 타 산업에 종사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김동영(23·신평면 상오리) 씨는 “당진 축산업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안고 도시에서 고향 당진으로 내려왔다.

축산업을 마음 먹기까지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김 씨는 담임교사로부터 ‘부모님을 따라 축산업에 종사하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일반 기업, 정육점, 음식점 등을 거치고 지금 고향에 내려와 축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김만태 씨 또한 김 씨에게 “다른 일에 비해 축산업의 현실이 어렵지만은 않다”며 “농촌에서 축산업을 종사하는 것 또한 괜찮은 일”이라고 추천했다.

학교생활로 인해 수원에서 살면서 주말이면 10년 전 귀농한 부모님을 따라 면천면 율사리 농장을 찾아 일을 도와 왔기에 농업은 김 씨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공부엔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그는 부모님의 가업을 잇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 농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천안연암대학 축산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바로 농촌 당진으로 내려와 2년 째 소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생각과 달랐던 농업의 현실

하지만 축산업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대학 첫 수업 당시 “축산은 돈 벌려고 하는 것”이라는 교수의 말이 그에게 새삼 다가왔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축산업 역시 ‘경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업은 생각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살아있는 ‘생명’을 다뤄야 하는 직업이었기에 작은 실수가 큰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또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여름의 경우 보신탕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님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축산업과 음식점 일을 번갈아가며 일해야만 했다. 하루 4시간 만 눈을 붙이고 일 할 때가 많았다. 또 매일 같이 자라나는 소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이상 자리를 비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김 씨가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아버지 혼자 농장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마음 또한 불편해, 휴가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단다.
“한 때 슬럼프가 찾아왔죠. 일은 하기 싫은데 잠조차 못자니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었어요. 그때 형과 술 한 잔 하면서 고민을 토로했고 현실적인 조언을 들으면서 슬럼프를 이겨냈죠.”

생명이 주는 뿌듯함과 활력

농군의 삶이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농업’이 주는 의미 때문이었다. 생명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 가운데서 느끼는 활력과 뿌듯함이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다.
그는 “아픈 소가 살이 쪽 빠졌다가 정성껏 치료를 하면서 다시 살이 올라올 때 그 때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아직 농업을 종사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농군인 그는 스스로 나서서 정보를 구하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 당진시연합회, 농업기술대학 한우과정 총무, 면천자율방범대 등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사회단체 활동을 통해서 어른들을 만나고 그분들을 통해 농업에 대한 정보들을 얻는다”며 “막내라서 어르신들이 더 많이 챙겨주셔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외로운 시골살이

그는 20여 년을 도시에서 살아 온 도시 청년이다. 부모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주말마다 찾은 당진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농촌에서의 삶은 도시와는 정반대였다. 특히 외로움은 지금까지도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초·중·고등학교를 이곳에서 졸업하지 않은 만큼 당진에 또래 친구가 없는 점이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또 축산업이 하루도 쉬기 어렵다보니 도시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조차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도 친구들이 김 씨를 만나러 당진을 찾아와 바쁜 그의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외로움만 제외하면 농촌의 삶이 더욱 풍요롭다는 그는 이제 시골 청년이 다 됐다. 그는 “이제는 도시에서 못 살겠다”며 “이젠 정말 촌놈이 됐다”고 웃었다. 복잡한 도시에 비해 여유로운 삶을 찾았기에 이곳이 좋단다. 종종 농촌이 갖고 있는 여유를 잘 모르는 도시 친구들이 농촌의 삶에 대해 비웃을 때면 그는 “도시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잘 산다”며 농촌의 대변가가 된다고.

“소 잘키우는 사람 될 것”

축산인으로서 그는 분명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 김 씨는 “당진 축산업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주변에서 “그 집 소 참 잘 키운다”는 소리가 듣고 싶단다. 또한 한우 농가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는 협동조합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식량 생산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산업이에요. 1차 산업인 농업이 쇠퇴한다고 하지만 미래에는 1차 산업이 커지면 커졌지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비전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농촌 생활에 대해 젊은이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농촌의 삶이 오히려 더 풍요롭고 행복하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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