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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3] 합덕읍 신촌리 출신 민주평통 김원국 영등포구협의회장
지게 지던 꼬마, 영등포구에 ‘우뚝’

농부 아들로 태어나 공부 대신 농사
“고향 발전 지키는 분들께 감사”
한수미l승인2015.06.19 22:36l(10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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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국 회장이 걸어온 길

-합덕읍 신촌리 출신
-한국4-H 충청남도연합회 회장
-사단법인 전국농업기술자협회 당진군지회 부회장
-바르게살기운동 영등포구협의회 부회장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선정
-미국 로스앤젤레스 명예시민 위촉
-국회입법보좌관
-영등포구청 의정보좌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김원국 영등포구협의회장은 “고향은 엄마의 품 같은 것”이라며 “없어서도, 잊어서도 안 될 기둥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4남 1녀 막내 ‘쉰둥이’
김원국 회장은 1946년 합덕읍 신촌리에서 4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 나이가 쉰이었으니 그는 ‘쉰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책과 연필보단 지게와 호미를 잡는 날이 더 많았다. 겨우 내 논에서 얼었던 물이 차츰 녹아 찰방거릴 때 쯤이면 어김없이 퇴비를 어깨에 메고 논으로 갔다. 그의 유년시절은 언제나 소들평야와 함께였다.

“배고픈 시절, 농촌운동 앞장서”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농촌은 살아있었다. 없던 시절에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콩 한쪽도 나눠 먹고 품앗이를 다니며 서로를 돕고 함께 살던 인간의 정이 가득한 곳이 우리 고향, 시골이었다.

그는 농촌운동인 4H운동에 적극 뛰어들며 신촌4H구락부를 시작으로 4H당진군연합회장을 비롯해 충청남도연합회장까지 역임했다. 당시 합덕에서 당진까지 비포장길을 걸어 다니면서 농촌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그 땐 참 배가 고팠던 시절”이라며 “하지만 누굴 미워하거나 그런 것 하나 없이 사람 냄새가 풍겼다”고 말했다.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하지만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부모님은 더 이상 농사일을 할 수 없었고 온 가족이 서울로 떠나야 했다. 서울에 와서도 기차를 타고 신례원을 거쳐 5~6시간 걸리는 당진을 찾으며 4H활동을 이어갔다. 아내 백종숙 씨(정미면 출신)와 결혼한 이후 정식으로 영등포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힘들어도 정이 넘쳤던 시골과 달리 도시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시장 농수산물센터 하차부에서 밤새 짐을 나르며 일하기도 했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한국BBS 서울특별시연맹 지도사를 시작으로 생활에 안정을 찾았고 현재는 국제항공화물업체 익스프레스코리아 회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2013년 민주평화통밀자문회의 16기 영등포구협의회 회장으로 재임하며 지난해 12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고향 발전 돕는 이들, 고마워”
바쁜 생활 속에서도 1년에 두어 번 당진을 찾는다. 하지만 전과 달리 많은 것이 변했다. 그 당시 정리 안 된 경지들은 반듯하게 펼쳐 있고 집 앞까지 도로가 생겨 차들이 다닌다. 하지만 여전히 우강들녘은 그를 기다린다.
그는 “고향을 지키며 향토 발전을 위해 일하는 분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며 “이곳에서도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고향에 살 때는 고향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타지에 나와 있으니 그 중요함을 알겠더군요. 고향을 지키는 분들도 고향을 소중히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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