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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5.07.31 14:45
  • 호수 1070

[칼럼] 장의환 전 면천향교 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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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가 무너진 불신사회

어려서 난생처음으로 학당에 입학해 한 스승 밑에서 글을 배워 도(道)를 같이하는 벗을 한자로 붕(朋)이라한다. 또 함께 성장해 뜻이 맞아 사귄 벗을 우(友)라 하여 벗을 뜻하는 말로 붕우(朋友)라 하며 벗 간의 신의(信義)를 중히 여겨 일찍이 오륜(五倫)에 붕우유신(朋友有信)을 규정하였다.
믿을 신(新) 자의 뜻은 사람 인(人)자와 말씀 언(言) 자의 결합으로 사람이 진심으로 남에게 말하면 곧 믿음을 나타낸다는 회의문자(會意文字)다. 신의(信義)는 벗과 벗 사이에 믿음을 바탕으로 성립한 도덕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개념이다.

사람이 사회 생활함에 있어 남에게 진심으로 말하면 뭇 사람이 그 말을 자연히 신뢰(信賴)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인격을 신망(信望)하게 된다. 또한 그 사람의 말이 행동과 부합될 때 사회는 모름지기 신의(信義)사회로 발전하게 되며, 사회적 경제 질서가 확립되는 신용(信用)사회를 이루게 된다. 정치 지도자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선정을 베풀 때 비로소 국민의 신임(信任)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전기오신(信賴, 信望, 信義, 信用, 信任)이 국가 사회의 기초를 다지는데 초석이 된다.

격언연벽(格言聯璧)에서 노름과 오락으로 사귄 벗은 하루를 넘지 못하고, 술과 음식으로 사귄 벗은 한 달을 넘기지 못하며, 세력과 이익으로 사귄 벗은 한 해를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오직 도리와 정의로 사귄 벗만이 영원할 수 있다고 했다.

순자 권학편(勸學편)에서 백아는 그의 지기(知己) 종자기가 자기음악을 이해하는 자인데 병으로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백아절현(伯牙絶絃)에서 유래한 지음(知音)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벗을 말한다. 반면 일우(呢友)는 친하게는 지내지만 그 바탕이 이익 관계인 벗을 말한다.

공자(孔子)는 익자삼우(益者三友)로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 진실한 사람을 벗하고 많이 배운 사람을 벗하면 유익하고, 손자삼우(損者三友)로 위선적인 사람을 벗하고 아첨 잘하는 사람을 벗하고 말만 잘하는 사람을 벗하면 해롭다고 하였다.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서로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벗을 말하는데 사기(史記)에 전하는 고사에 의하면 제나라 때 관중과 포숙아는 어릴 때부터 벗이었다. 한 때 관중과 포숙아는 장사를 했는데 관중이 가난하여 출자금을 조금 밖에 안냈지만 포숙아는 이익을 반분했다. 포숙아의 하인이 불평하자 포숙아는 관중이 집이 가난해서 그렇다고 하인을 나무랐다.

한 번은 둘이 같이 싸움터에 나갔는데 관중은 쳐들어 갈 때는 제일 뒤에 서고 도망갈 때는 맨 앞장에서 가니 비겁하다는 비웃음을 받을 때 포숙아는 관중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훗날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일인자가 된 환공을 도와 천하를 움직이는 대 정치가가 된 관중은 “나를 낳으신 분은 부모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포숙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백아가 종자기를 알아주고 관중이 포숙아를 알아준 도의지교(道義之交)는 이제는 먼 옛날의 미담으로 남아 역사가 증언할 뿐이다. 지금 세상은 정치권 사회에 식언(食言)이란 신조어가 생겨 말 바꾸기를 식은 밥 먹듯 한다. 부정부패의 대형사건이 터지면 형책을 받을 몸통은 유체이탈 어법을 구사하며 본인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고 수하나 변방에서 잘못했으니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꼴은 눈뜨고 못 볼 꼴불견이다. 정권에 대해선 국가권력의 불법을 처벌치 못하는 정권은 법치(法治)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이면의 흑막(黑幕)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권력을 잡아 권좌에 오르면 높은 자리에 앉아서 내려올 줄 모르고 버티고 앉아 있기만 하니 국민과의 괴리감만 날로 커질 뿐이다. 옛 말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고사와 같이 위정자가 청렴하고 정직하며 국민과 약속한 신의를 지켜야 국민이 따를 텐데 지금 현실은 그러하지 않으니 사회는 온갖 갈등과 반목으로 불신사회(不信社會)로 전락하여 신의(信義)는 피안(彼岸)의 경지(敬止)에 멈춰 있어 정상회복(正常回復)은 안개 속에 가려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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