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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졸업연설한 정원희 씨(계성초·호서중·호서고 졸업, 부 정봉채·모 김만재)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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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연극·봉사 등 활발한 활동
“장애인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이길”

한 사람을 만났다. 26살 여성인 정원희(읍내동, 부 정봉채·모 김만재) 씨는 얼마 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며 학위수여식에서 학생대표로 졸업연설을 맡았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와 단둘이 미국여행을 했을 정도로 당찬 사람이다. 교육 여건이 그리 좋지 않은 당진에 살면서 서울대까지 갔으니 중고등학생 때 꽤 공부도 잘하고 똘똘한 학생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대학에선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무대에도 올랐고, 장애인·다문화가정을 돕는 여러 봉사활동도 했다. 지금은 한국투자공사에 입사해 해외투자 전문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정원희 씨는 장애인이다. 그는 선천적인 뇌성마비로 인해 걷지 못한다. 원희 씨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에 대해 얘기하다, 나중에서야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감탄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학교생활도 잘하고, 여행도 많이 하고,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봉사활동까지 한데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법하다. 그러나 정 씨는 그러한 일들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라고 말한다. 

“비장애인들은 계단을 자유롭게 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저처럼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기 때문에 신체적 결함이 장애가 돼요. 그런데 경사로를 설치해 장애인들도 쉽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든다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있어 신체적 결함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아요. 장애는 결국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의 개념인 것이죠. 보통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장애인들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서, 장애가 장애가 아닌 사회, 장애를 갖고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상황을 바꾸는 건 결국 마음”

계성초(45회)·호서중(36회)·호서고(36회) 출신으로 지난 8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원희 씨는 학생대표로 졸업연설을 맡았다.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그는 “훌륭한 학생들이 많은데 나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나의 말이 장애를 갖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진 않았을지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각자 사람들이 처한 조건과 상황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이 졸업연설에서 전한 메시지가 원희 씨처럼 살고 있지 못한 다른 장애인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을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연설을 통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큰 어려움과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개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는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해 절망하지 말고, 결국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단다. 

그가 장애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장애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덕분에 씩씩하고 밝고 당찬 아이로 자랐다. 하지만 원희 씨의 부모가 그를 이렇게 키우기까지 마음고생은 누구보다도 컸을 것이다. 뒤집기를 해야 할 아기가 몸을 뒤집지 못하고, 앉아 있어야할 시기에 앉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린 부모는 생후 11개월만에 자신의 첫 딸아이에게 내려진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모님이 자세히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 젊은 날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왜 나에게,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도 많았을 거예요. 그 시간을 견뎌내신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요. 제가 장애를 극복했다기 보다, 부모님이 극복한 것이죠.” 
부모님뿐만 아니라 친구도, 선생님들도 원희 씨가 생활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줬다. 호서중·고등학교에서도 그가 학교를 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화장실을 보수하고, 경사로를 만드는가 하면, 학교 다니는 내내 교실배치를 1층에 하는 등 아낌없이 그를 배려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르막이 많은 서울대 교정도 친구들과 함께 하니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다. 

“다양한 경험이 자양분 되다”

어느 날 선배가 연극무대에 오를 것을 제안했다. 한 번도 연극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는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원희 씨는 “평소에 장애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많은 시선을 받는데, 그것은 결코 긍정의 시선은 아니었다”며 “연극무대에 선 것은 사람들의 긍정의 시선이 머무는 무대 위에서 장애를 가진 몸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장애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학생과 그 부모들에게 원희 씨 스스로가 희망의 증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많은 곳을 여행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대학생 때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일 거라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활동했죠. 그러한 경험이 제 삶에 풍부한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한국투자공사 주식운용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원희 씨는 앞으로 해외투자 등 관련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남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전했다. 

“안 그래도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장애인들은 많은 편견에 부딪혀 더욱 고배를 마시고 있어요. 면접관들은 장애만 바라볼 뿐, 다른 지원자들처럼 그들에게 능력과 가능성을 묻지 않죠.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갖고 더욱 이해하고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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