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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 꿈꾸던 미술학도
출향인 인터뷰 7
이재교 굿플러스 커뮤니케이션스(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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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 뛰어들다
시위현장서 숨진 강경대 열사 영정 그려

이재교 대표는…
- 1968년생. 정미면 봉성리 출신
- 정미초·미호중·호서고 졸업
-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 전공
- 굿플러스 커뮤니케이션즈(주) 대표이사

서슬 퍼렇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의 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캐한 최루탄이 터졌다. 학생들은 강의실보다 거리에 있을 때가 많았다. 대학 내에 군인과 경찰이 드나들었다. 데모는 일상이었다.
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니던 이재교 굿플러스 커뮤니케이션스(주) 대표는 서양화를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당시 시위하던 한 학생이 이를 진압하던 전경에게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재교 대표가 그의 영정을 그렸다. 영정의 주인공은 바로 1991년 노태우 정권의 부조리함을 외치다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명지대학생 강경대 열사다.

1996년 김영삼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다 강경진압에 숨진 연세대학생 노수석 열사의 추도식 때도 그를 기리며 걸개그림을 그렸다. 오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청년미술운동에 뛰어들어 오랫동안 학생운동을 했다. 미술을 전공한 그에게 예술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민초들의 삶과 동떨어진 예술에 대해 부정적이었어요. 감상자가 알아 볼 수 없는, 메시지를 읽기 어려운 그림은 그저 자기만족적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사회 본질을 외면하는 그림이 과연 예술사에 남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서울로 유학을 떠난 그는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당진미술학원을 다니면서 미술가의 꿈을 키워오던 학생이었다. 그러다 대학에서 마주한 현실 앞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렇게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국민 책임지는 정치인 보고 싶다
하지만 1997년도에 김대중 정권으로 바뀌면서 운동의 공백기가 찾아왔다. 격렬했던 사회참여와 운동을 10년 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 촛불집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최근 그는 다시 분노하고 있다.

“점점 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고 있어요. 재벌들은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지만 정작 중산층 이하의 노동자들은 생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죠. 사회시스템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국정원 사건, 세월호 문제 등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이 상태로는 진실을 밝히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도 답답하기만 하다. 여당을 견제하기엔 야당은 너무 느슨하고 책임감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내년 총선이 걱정스럽다.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책임지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나이 드니 그리운 고향집
이 대표는 최근 정미면 봉성리 고향집을 자주 오가며 집을 고치고 있다. 손수 하나하나 고치고 만져가면서 고향에서 지낼 앞날도 막연히 생각해 본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은 집이 거의 허물어져가고 있는데, 잘 고쳐서 사람들이 워크샵이나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며 “어렸을 땐 시골을 그렇게 떠나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 고향을 가꾸고, 쓸모 있게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당진은 아주 시골이었다. 초등학생 때 처음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단다. 그전엔 호롱불을 곁에 두고 할머니가 목화솜을 물레에 돌려 실을 짜던 일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집 앞엔 빨래터가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곤 했다. 사람들은 샘이 나는 이곳을 “방죽안”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폐교된 모교, 미호중은 당시엔 학생수가 수백 명에 달했다. 한 반에 60명씩, 콩나물시루 같았고, 학교 주변엔 학용품 가게와 분식집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새 학생이 줄고 줄어 폐교된 모습을 보면 마음 한편이 허허롭다. 가끔 학교를 찾아가지만 인적 없는 학교는 고요함과 적적함, 싸늘함만이 가득하다.

디자인·책 만드는 회사 ‘굿플’
방위 출신인 그는 군복무를 고향에서 하면서 <당진시대>와도 인연을 맺어 가명으로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내일신문사에 입사해 디자인팀에서 근무했다. 내일신문사에서 발행하는 <대학내일> 창간에도 함께했다. 그가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다. 모르는 길도 새로 생겨나고, 곳곳이 개발돼 옛날 같지 않다. 이재교 대표는 “어느 도시에서나 보고 느낄 수 있는 같은 모습이 아니라, 당진만의 느낌이 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가 지금 운영하는 굿플러스 커뮤니케이션스(이하 굿플)는 홍익대 인근에 위치한 디자인 회사다. 브로슈어와 홍보전단, 광고물 등 여러 가지 홍보물을 만든다. 그의 성향처럼 특히 정치 홍보물이나 현수막 디자인도 많이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출판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자기개발서나 실용성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책을 내고자 시작했다. 그가 특히 애정을 갖고 있는 책은 <장수군의 비밀>이다. 이 책은 10년 전만해도 특산물조차 변변한 것이 없는 가난한 마을이었던 전라북도 장수군이 생태순환농업 등을 통해 지금은 농업으로만 농가 70%가 1억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으로 변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 정부에 상당히 비판적인 그의 회사에서 나온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이재교 대표는 “광고주의 의뢰를 받아 만드는 홍보물보다, 기획부터 모든 과정을 도맡아야 하는 출판일은 꽤 힘들지만 무척 재밌다”며 “나와 회사의 정치적 성향이 뚜렷해 가끔 힘들어하는 직원도 있지만, 지금은 함께 생각을 공유하면서 재밌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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