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4-26 19:24 (금)

본문영역

“죽음이요? 인생의 한 순간일 뿐이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어머니·남편의 죽음을 1년 새 겪어
어깨 위 얹힌 죽음은 삶의 화두

 

“60대가 되면 해마다 몸이 달라지죠. 70대가 되니 달마다 달라져요. 그럼 80대는? 80대는 하루가 다르답니다. 90대도 마찬가지에요. 90km/h 속도로 달리니 시간마다 달라지죠. 일흔 셋인 저는 지금 70km/h 속도로 달리고 있어요. 빠르죠? 늙는다는 건 그래요.”

죽음은 아무도 모른다. 누구 하나 명쾌히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만큼 겁내고 무서워한다. 죽음을 입 밖으로 꺼내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눈총 받기 일쑤다. 하지만 김귀자 노년학 박사는 사는 것만큼 죽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강단에 서서 많은 이들에게 행복하게 살고 죽는 방법을 알리고 함께 고민한다. 그는 죽음을 삶의 마지막 단계라 말했다. 하지만 끝은 아니란다. 언젠가는 오는 순간이기에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진정한 웰다잉이라고 말했다.

가족의 죽음을 겪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언니와 함께 온 가족이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국어 교사로 교단에 섰다. 그렇게 10년 중 2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이후 가족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부족한 것도 없었고 일상은 평범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1989년에 일어났다. 1년 사이에 어머니와 아버지, 남편의 죽음을 겪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뇌졸중으로 반신마비와 황반변성으로 시야가 좁아져 시각을 거의 잃은 아버지는 10여 년간 집에만 있었다. 그 옆에는 항상 어머니가 수발을 들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에게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며 “어떤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지는 알아야 겠다”면서 병원을 데리고 갔다.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킨 후 어머니가 돌아왔다.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라. 그렇게 잠시 자겠다고 방안에 들어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늦은 저녁까지 누워 있기에 흔들어 깨웠지만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다시는 깨어나지 않은 채로 3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해에 아버지와 남편도 세상을 떴다.

죽음을 생각하다
가족의 장례를 치르고 잠에 빠져든 그는 자고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잠을 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항상 죽음과 함께 물음표가 뒤따랐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 역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음이 무엇이며 왜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났는지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는 죽음에 대해 알아가기로 했다. ‘죽음’이란 단어만 눈에 들어왔단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 각당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세미나’를 접했다. 일주일 간 진행되던 세미나는 전 좌석이 꽉 찰 정도로 인기였다. 그 또한 복도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세미나를 들었다. 그 강의를 시작으로 그는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진을 찾다
그는 “당진에 바람 타고 날라왔다”고 말했다. 정말 바람 따라 날라 왔는지도 모른다. 그 전까지만 해도 당진이 어떤 곳인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종교 모임에서 만난 당진사람이 김 박사가 호스피스 봉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 당진에도 도움을 줄 것을 권유했다.

한 번 해보자는 마음에 당진을 찾았다. 그렇게 죽음을 앞 둔, 눈이 안 보이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다음에 또 오겠다고. 그렇게 1년 간 할아버지를 찾아 당진을 오갔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그가 집필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당진에서 살라고 권유했다. 몇 달은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그도 서울에서의 지친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 우강면 신송리에 비어있는 헛간을 수리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작은 창문 밖에 펼쳐진 논 위로 해가 뜨는 멋진 헛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당진에 정착하게 됐다.

죽음을 가르치다
죽음에 대한 강좌 및 세미나, 워크숍이 있다면 배우기 위해 어디든 갔다. 그 당시는 죽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전부이기에 죽음을 입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그냥 공부만 했다. 그러다 한서대학교 대학원에서 노년학 박사를 취득하고 2004년 한서대 사회복지학과에서 강의를 하며 죽음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15주의 강좌 중 한 강좌 시간에 학생들에게 죽음을 물었다. 이조차 조심스러웠단다. 하지만 모든 강의를 마친 뒤 학생들은 죽음에 대한 강좌가 인상 깊었다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그 때부터 웰다잉을 주제로 강단에 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 우리 지역에서도 잘 살고 잘 죽는 웰빙·웰다잉 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죽음을 묻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을 떠나보낸 1989년 그 이후로 죽음이란 단어를 그의 삶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다. 항상 어깨 위에 죽음이 얹혀 있다는 김귀자 박사다. 그는 “죽음은 친구 같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혼자 있을 때도 심심하지 않단다. 그는 “죽음은 알 수 없는 존재”라며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겁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죽음을 두려운 상대가 아닌 받아들여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죽기 전까지 행복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죽음도 사는 것의 연장이에요. 삶의 다른 모습이죠. 죽음에 대한 정해진 답은 없어요. 그냥 오늘의 소중함을 찾으세요. 지금 잘 살면 됩니다. 죽음은 나중 문제에요.”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