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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0.09.25 00:00
  • 호수 339

백제부흥운동과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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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부흥운동과 당진
한·중·일 역사서 연구한 박성흥 옹

이번에 일본인들의 사적답사를 인솔해 당진을 순회한 재야사학자 박성흥(84세) 옹은 덕산 사람으로 일본인들의 백제부흥운동사 연구에 그동안 창구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인들이 백제사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한국땅에서 건너가 일본에 정착했다는 소위 ‘도래인’에 관한 연구와 백제문화및 일본문화의 유사성이 그것을 설명해 준다.
그런데 백제부흥 운동기의 사적지는 논란이 분분하며 삼국사기에서도 뚜렷한 지명이나 위치를 기술하고 있지 않아 이 시기의 마지막 백제사는 아직까지도 분명한 윤곽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국사기는 이 당시 왕도였던 주유성에 대해 “지명은 있으되 위치는 알 수 없는 성”이라 하였다.
더구나 일본에 있어서 이 시기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백제가 ‘풍왕’을 중심으로 재건을 꾀하면서 일본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점을 통해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재조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만의 군대를 파견해 잃고도 그 항전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데에도 중요한 열쇠가 될 부분이다.
현재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주유성’으로 거론되는 지역은 <홍성> <서천> <부안> <연기> 등 네 곳이다. 그 가운데 그간 정설로 받아들여온 서천의 성은 최근 고려시대의 성으로 판명되었다. 박성흥 옹의 홍성-당진 설은 19세기 김정호선생이 쓴 <대동여지>에서 “홍주목이 본래 백제 주유성인 바”라고 한 것과도 맥이 통하며 그간 한국과 일본, 중국의 역사서를 10여년간 연구한 결과다.
박 옹은 공직을 은퇴한 후 줄곧 이 분야의 연구에 몰두해 10년이 넘는 동안 현지확인을 위해 당진을 수없이 답사했으며 심지어 홍성과 당진 사이의 보행시간을 재기 위해 하루를 꼬박 걷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더구나 박 옹은 그 사이 여러 학술지를 통해 일본과 국내에 ‘백제부흥운동 전적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왔다.
이번 일본인 역사답사가 박 옹의 논문을 계기로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박 옹은 이날도 대부분의 답사지에서 일본어로 직접 자신의 주장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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