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진짜 실패는 포기하는 것”
일흔 살 늦깎이 고등학생 강우영 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안 형편으로 포기했던 공부…55년 만에 한 풀어
왕복 590km 오가며 손에 쥔 중학교 졸업장

 

“인생의 성패는 어느 날 심지 뽑기 하듯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로또 당첨되듯 갑자기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진짜 실패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마음 속 깊이 맺혔던 배움의 한(恨)을 55년 만에 풀어낸 강우영(70,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장) 씨는 얼마 전 당당하게 중학교 졸업장을 손에 넣고 지금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한 달에 두 번씩 당진에서 대구까지 왕복 590여km의 거리를 오가면서 얻어낸 결실이기에 남들에겐 쉽게 쥐어지는 중학교 졸업장이 그에겐 매우 특별하다.

책가방 대신 지게를 지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당시,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수술이라도 해보자는 아버지에게 기껏해야 1년 더 살아보자고 가족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재산을 털어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어머니의 단호한 결정에 부모님이 언쟁을 벌이던 것을 어린 소년이었던 그는 잠결에 들었다.

목 메이던 목소리로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반 토막으로 줄여 놓고 내가 죽으면 당신과 어린 자식들은 입에 풀칠도 못 한다”던 어머니는 그 다음해 봄, 보리가 노랗게 익어가던 어느 날 가족들의 품을 영영 떠났다.

중학교에 입학해야 했던 그에게 아버지는 공주사범대 입학을 앞두고 있던 형에게 배움의 기회를 양보하라며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뿔이 두 개 난 지게를 주셨다. 그렇게 중학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강 씨는 여린 어깨에 책가방 대신 지게를 지기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 마크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지나갈 때면 어쩐지 부끄러워 담벼락 뒤에 숨었다가 대문 틈으로 보인 그 모습이 사라져 갈 때쯤 다시 나와 일을 하곤 했다.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당시 형편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강우영 씨는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싶지 않고, 가르치고 싶지 않았겠느냐”며 “아버지도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님, 자랑스러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낮엔 일하고 밤엔 횃불을 만들어 건설현장을 둘러보면서 나만의 지식을 쌓아갔다.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하려는 열망은 항상 그의 마음속에 가득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3년 전, 방송통신중학교가 처음 대구에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길로 학교에 입학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내가 차려준 새벽밥을 먹고, 천안아산역까지 가서 첫차를 타고 대구로 갔다. 동대구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다시 갈아타고, 또 내려서 20여 분을 걸어야만 학교정문에 들어갈 수 있는 긴 여정이었다. 검정고시라는 조금은 쉬운 길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시험장에 들어서면 늘 문제 풀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는 정규학교를 선택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50년 세월 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배움에 대한 열망과 자식들의 응원으로 어려운 순간들을 견뎌냈다. 강 씨는 “이력서에 쓸 게 없어 남들 앞에 괜히 움츠려 들었던 기억, 그리고 ‘아버님이 자랑스럽다’던 며느리의 한 마디에 힘을 얻었다”며 “중학교를 다시 다닐 수만 있다면 부산이었어도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슴 뭉클했던 중학교 졸업식 날

교실, 책상, 의자, 그리고 ‘차렷, 경례’하며 선생님께 드리던 인사, 학우들과 도시락을 함께 먹는 일은 그의 인생에 더는 없을 줄 알았던 일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늦깎이 학생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이해해주는 좋은 동무들이었다. 각자 농사지은 것들로 도시락 반찬을 싸오고, 사과며 배 등 제철 과일들을 함께 나눠 먹으며 서로의 어려움을 위로했던 친구들이다.

그렇게 3년을 꼬박 대구에 있는 방송통신중학교에 출석하며 지난 2월 그는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졸업식을 하던 날 강 씨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 맺힌 지난날들과 새벽 공기를 뚫고 대구를 향하던 기억 등이 머릿 속에 필름처럼 지나가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충남도내에 있는 홍성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해 지금은 늦깎이 고등학생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대학도 가야죠. 인생 100세 시대 아니겠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그게 진짜 죽는 거예요. 나이 들어서도 배우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여생을 포기 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