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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16.05.28 23:28
  • 수정 2016.05.28 23:31
  • 호수 1110

지영이에게 ‘지역 공동체’는 없었다
친부로부터 10년 간 성 학대 받아온 소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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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엄마·남동생도 피해자…폭언·폭행 일삼아
분리에만 급급…아버지 처벌·피해자 치료는 뒷전

꿈을 꾸었다.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단 한 순간도 피어보지 못한 꽃망울이 짓밟히는 동안, 아무도 소녀를 돕지 못했다. 아니 돕지 않았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악몽이 10년 동안 이어졌다. 소녀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 아버지는 결국 감옥에 갔지만,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는 자기 자신을 해하고, 죽음을 떠올리며 여전히 지옥 속에 산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적어도 지영(가명, 당진2동·19)이와는 상관없는, 한가로운 이야기에 불과했다.

7살부터 시작된 성추행…남동생에게도

지난 2004년, 당시 7살이었던 지영이에게 끔찍한 일이 시작됐다. 그날도 아버지는 아이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장애 2급인 엄마와 성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지영이에게 “엄마처럼 해보라”고 시켰다. 무서워 엄마 뒤로 숨은 어린 지영이를 아버지는 강제로 추행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추행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아버지는 말을 듣지 않으면 욕을 퍼붓고 때리기 일쑤였다.

지영이가 12살이었던 2009년 여름, 아버지는 엄마와 동생에게 복권을 사오라며 시장에 내보낸 뒤, 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지영이를 강간했다. 이후에도 엄마가 집을 비우면 지영이에게 자주 손을 댔다. 아버지가 안방의 벽장을 열 때면 어김없이 지영이는 무너져 내렸다. 지영이는 벽장 안에서 콘돔을 꺼내던 아버지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지영이의 방을 지나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었던 집 구조 상, 새벽녘 화장실을 다녀오던 아버지는 지영이를 자주 괴롭혔다. 콘돔이 없던 날엔 검은 비닐로 대신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낮이든 밤이든 아버지의 추행은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려던 지영이를 붙잡아 추행한 적도 있었고, 잔뜩 술에 취해 들어와 지영이 몸에 손을 대는 날이 많았다. 지영이가 16살이었던 어느 날, 아버지의 요구를 지영이가 거부하자 아버지는 옆에 있던 남동생 민호를 추행했다. 엄마와 같이 지적장애를 가진 민호(가명)는 당시 9살에 불과했다.

쉼터 전전하는 동안 처벌 소극적

아버지는 결국 재판에 넘어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천안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아버지)은 친딸과 친아들을 상대로 10년에 걸쳐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면서 피해자들을 마치 자신의 성적 노리개처럼 다룬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들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커다란 충격과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하지만 피고인은 사건 범행을 부인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의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에 대한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지영이는 그동안 당진과 서산, 홍성, 천안, 대전, 충주 등을 전전했다. 청소년 쉼터 등 보호기관을 찾아다녔지만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피해자였던 지영이가 어느 순간엔 가해자가 되어있었다. 지영이는 쉼터에서 또래 여자아이들을 칼로 위협하며 성추행을 하기도 했고, 차도로 뛰어들어 자살시도를 하거나 수차례 자해하며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정한 상태를 보였다.

19살 밖에 되지 않은 지영이의 삶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동안 지영이 가족에게 지역공동체란 없었다. 지난 2009년 지영이 엄마는 마을주민에게 “아빠가 새끼를 잡아먹었다”며 범죄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지적장애가 있는 엄마의 말은 쉽게 무시됐다.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 때까지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마을주민들은 지영이 아버지에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의 성 학대는 계속됐고, 심지어 마을주민인 아버지 친구까지 지영이에게 손을 댔다.
 

10년 만에 이뤄진 수사

지영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2011년, 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지영이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상담 과정에서 지영이는 아버지에 대한 거센 증오감을 보였고, 가출과 외박을 일삼았다.
집으로 들어가길 거부하는 지영이는 당시 노인요양원에 보내졌고, 요양원장에게 친부에 의한 성폭행 사실을 말했으나 아버지에 대한 신고나 처벌 문제는 미뤄졌다.

2012년 찾아간 쉼터에서도, 2013년 학교에서도 지영이는 이 문제를 털어 놨지만 지역사회는 지영이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대책회의가 열렸지만 가족해체에 대한 부담으로 아버지와의 분리 문제만 다뤘을 뿐이었다. 지영이가 쉼터와 같은 보호시설을 전전하는 동안 아버지에 대한 신고와 지영이의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영이는 지난 2013년 담임교사에게 이 사실을 또 알렸고, 드디어 학교가 나서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겁이 난 지영이는 진술을 회피하거나 번복해 수사가 진전되지 않았다. 지영이가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고, “너 때문에 가정이 해체된다”면서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자신의 안전과 신변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린 지영이는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4년 담임교사에게 다시 얘기하고 나서야 경찰의 재수사가 시작됐다.

이렇게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지영이에 대한 아버지의 성 학대 사실을 지역사회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처벌할 수 있었다. 아이는 끊임없이 주변에 손을 내밀었고, 도움을 청하는 사인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주민, 복지기관, 지자체,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동안 지영이의 상처는 깊어져만 갔다.

지영이의 이모는 “처음 문제가 인지됐을 때, 제대로 된 대처만 했었더라도 더 빨리 지영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기사는 지영이 이모의 증언과 법원의 판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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