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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성구미포구 성광호 선주 우동기 씨(송산면 가곡리)
오늘도 성광호는 바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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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미포구에서 반평생을 함께한 배
산업화로 삶의 터전 사라져 안타까워

성광호는 오늘도 푸른 바다로 힘차게 나아간다. 30년 전 당진 앞바다에서 만선의 꿈을 꾸던 성광호가 다시 물길을 가른다. 30년 전 만들어진 목선 성광호가 우동기(61·송산면 가곡리) 씨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새 옷을 입었다.
우 씨는 오래된 목선을 수선하는 건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라며 바쁜 일손을 재촉했다. 반평생을 함께 해 온 성광호가 45일간의 수리를 거쳐 다시 태어나는 날, 우 씨는 성광호와 함께 바다에서 산 지난날이 생각나 무척이나 감회가 새롭다.

“내 보물1호 성광호”
우 씨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당진엔 어부가 많았다. 우 씨의 부모님 역시 바다와 갯벌에서 삶을 일궈갔고, 우 씨 역시 자연스럽게 뱃일을 물려받았다. 성구미포구에서 나고 자란 우동기 씨는 고기 잡는 일은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60세가 될 때까지 그는 성구미포구를 떠난 적이 없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은 오랜 시간 동안 그가 바다 위에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 씨는 1988년 성광호를 처음 만났다. 지역에서 배를 잘 만들기로 이름이 나 있던 박창재 도편수에게 평생 쓸 수 있는 어선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지은 어선에 우 씨는 ‘성광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구미포구의 ‘성’과 빛 ‘광’자가 담긴 이름이다. 올해로 우 씨와 함께한 지 29년이 된 성광호는 사람의 나이로는 환갑쯤 됐단다. 우 씨와 동갑인 셈이다. 우 씨는 “성광호는 나와 젊음을 함께 보낸 동반자”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1호”라고 말했다.

성광호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바다는 엄마 품처럼 넉넉하고 푸근하며, 끊임없이 주기만 한다. 하지만 때때로 성난 파도가 사춘기 소년처럼 거칠게 몰아칠 때면 자연 앞에 인간은 초라할 뿐이라는 걸 느낀다. 바다는 우동기 씨에서 삶을 선물했지만, 때로는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기도 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 씨는 그동안 성광호를 타고 봄에는 실치·우럭·광어를, 가을에는 새우·주꾸미·꽃게를 잡아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그렇게 바다로부터 키워낸 자녀들은 어느덧 30대가 됐고, 모두 시집·장가까지 보냈다. 우 씨는 자신과 가족을 책임져 온 성광호에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30년이 지나 곳곳에 상처투성이가 된 성광호를 볼 때면 마음이 한켠이 아프다. 우 씨는 “내 일생은 모두 성광호에 담겨 있다”며 “성광호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고 말했다.

삶의 터전 없어져 막막
우동기 씨와 성광호의 일생이 담긴 성구미포구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현대제철이 들어서면서 어항은 점점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현대제철 투기장 호안 조성 공사로 인해 배를 대던 방파제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성구미포구에서 살던 그는 성구미포구 북항으로 터를 옮겼다. 우 씨는 “어민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 문제”라며 “어민들이 일생을 바쳐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산업화로 병들어 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푸른 바다 넘실 거리던 ‘물 반, 고기 반’이었던 바다는 이제 옛말”이라고 한탄했다.
“앞으로도 성광호와 함께 하고 싶어요. 성광호가 아프면 내 몸이 아플 정도로 애틋하죠. 성광호를 통해 1980년대 어민들의 생활과 옛 모습 정취가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것이 변해가지만, 저와 같이 어업의 격동기를 겪었던 사람들과 이곳에서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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